3박 4일의 여행 - 2학기 중간고사
HongBee
첫째 날
“ OO야, 일어나 학교가야지~ ”
9월 24일, 오늘은 중간고사를 치러가는 첫 날! 오랜만에 아침 일찍 엄마가 나를 깨웠다.
올해 8월 여름방학의 한가운데에서 ‘호지킨 림프종’이라는 낯선 병명을 들었고 엄마와 아빠는 치료를 서둘러 결정하였기에 친구들과 변변한 작별인사도 없이 그렇게 병원생활의 시작을 맞이하고 개학을 하지 못한 체 꿈사랑사이버학교에 등록하여 병원생활과 학업을 지속해 나갔다.
양치질을 하고 세수하는 물소리와 함께 나의 하루는 시작됐다. 어느새 지난밤 엄마가 잘 다려 놓은 교복을 꺼내 입고는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하나씩 쓰려 내렸다. 빗질을 한 번씩 할 때마다 친구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집을 나서서 차를 타고 가는 그 짧은 1~2분의 시간 속에서도 나는 너무 떨리고 한편으로는 조금 두렵기도 하였다. 저 멀리 학교 건물이 보인다. 매일 갔었던 학교였지만 오랜만에 오니 많이 낯선 느낌이다. 교문 뒤 일렬로 서 있는 은행나무도 그새 부쩍 커진 듯 하고 잎도 노랗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신발을 갈아 신고 복도를 밟자 '삐꺽 삐꺽‘ 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침자율시간이라 그런지 복도는 조용 했다. 나는 교실에서 시험을 치지 않고 보건실에서 시험을 치기로 했다. 나 혼자 보건실에 앉아 시험을 치니 뭔가 쓸쓸했다. 1교시를 마치는 종소리와 함께 보건실 창문너머로 친한 친구들의 얼굴이 보였다. 그리고 우리는 꼭 어제도 본 듯이 전혀 어색함 없이 환하게 인사를 주고받았다. 10분이라는 짧은 쉬는 시간 이였지만 우리는 많은 이야기 들을 주고받았다. 쉬는 시간마다 친구들은 나를 계속 찾아와 수다도 떨고 사진도 찍었다.
첫날 시험이 끝나고 나는 선뜻 이제 가야된다는 말도 못하고 담임선생님께만 인사한 뒤 집으로 돌아 왔다. 집에 오니 너무 아쉬웠다. 한동안 교복도 벗지 않은 채 그냥 멍하니 책상에 앉아 있었다. 그러나 한 가지 기쁜 것은 내일도 모레도 시험이 있다는 거다. 예전에는 중학교에 들어와 시험을 오래 치는 것이 힘들고 싫었는데 지금은 4일이나 시험을 치러 갈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내일도 학교에서 친구들과 만나는 걸 생각하며 하루를 마친다.
둘째 날
날이 밝았다.
입가의 씩 하는 미소를 지으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침대 옆에는 어제 입었던 교복이 가지런히 걸려 있었다. ‘OOO’ 라는 빨간 이름표가 내 눈에 들어왔다. 여느 때 아침처럼 오빠와 거울다툼으로 부산한 등교 준비를 마치고 학교를 가기 위해 운동화 끈을 꽉 묶었다.
아침의 등굣길은 어제 보지 못했던 또 다른 풍경이 보였다. 지난 태풍으로 인해 쓰러진 나무의 빈자리가 듬성듬성 보였다. 창밖을 보는 사이 어느새 학교에 도착 했다.
어제보다는 조금 더 가벼운 발걸음으로 나는 복도를 밟았다. 어느새 시험이 다 끝나고 길었을 것만 같았던 하루가 벌써 반이나 지나가고 있었다. 보건실을 나와 집으로 가기 위해 마스크를 쓰다 나는 잠깐 멈칫 하였다.
그리고 이내 1학년 1반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반에 들어가니 아이들이 깜짝 놀라며 나를 반갑게 맞이해 줬다. 짧은 인사를 나누고 꼭 나아서 2학년 때 같이 놀자며 작별인사 후 친구들이 미리 써놓은 편지를 한 가득 안고서 집으로 향했다.
셋째 날
오늘도 책가방을 메고 학교로 향한다.
집 앞 공원의 폭포수가 힘차게 나를 반겼다. 잠깐 서먹했지만 이젠 익숙해져버린 등굣길.
차에서 내려 급식소 옆을 지나는데 맛있는 냄새가 코를 자극하였다. ‘음~~,머지? 오늘 급식은 돈가스인가? 그러고 보니 학교 급식을 안 먹은 지도 꽤 됐네.’ 친구들과 모여앉아 수다를 떨며 맛있는 점심을 먹던 기억이 떠오른다.
‘드르륵’ 보건실 문을 열고 “안녕하세요” 인사 후 침대 앞 책상에 앉아 교과서를 펼쳤다. 하지만 내 마음은 시험걱정 보다는 쉬는 시간에 친구들과 나눌 이야기꺼리 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이윽고 쉬는 시간, 종소리와 함께 원희, 소희, 슬, 지수의 얼굴이 보였다. 친구들과 함께 간식으로 싸온 밤이랑 고구마를 나누어 먹으면서 우린 또 그렇게 환하게 웃으며 시험정보와 요점 정리를 했다.
아쉽지만 오늘은 오후에 병원에 가는 날이라 시험이 끝나자마자 친구들과 작별인사도 없이 나는 아빠의 차에 올라 부산으로 향한다.
승용차가 교문을 나서는 순간 나는 뒤를 돌아 내 교실 쪽을 향해 손을 흔든 후 혼자말로 인사를 하였다.
“얘들아 잘 있어 내일은 일찍 올게. 그리고 시험 잘 쳐!”
넷째 날
내 방 창문 커튼 사이로 따스한 햇살이 들어온다. 눈이 부셔 침대에서 일어났다.
오늘도 평상시처럼 양치질과 세수를 하고 식탁에 앉아 밥을 먹은 뒤 거울 앞에 서서 비뚤 어진 넥타이를 고쳐 메고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어제와 달리 나는 느릿느릿 운동화 끈을 매었다. 그리곤 힘없고 시무룩한 표정으로 차에 올라타자 아빠께서 물으셨다. “우리 딸 오늘 따라 왜 이렇게 힘이 없어?”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애써 웃음을 지어 보여주었다. 하지만 괜찮다는 말과 달리 내 마음은 전혀 괜찮지가 않았다. ‘아빠 나 오늘이 시험이 끝나는 날이라고 생각하니 조금 슬퍼서 그래’ 라며 마음속으로 다른 대답을 하고 있었다.
마지막 시험도 어느새 종소리와 함께 끝나고 책가방을 챙겨 보건실 문을 나왔다.
보건실 앞에는 선생님과 많은 친구들이 와 있었다. 모두들 “OO야! 얼른나아서 빨리와.”하며 선생님과 친구들이 주차장 까지 배웅해주며 손을 흔들어 주고 나 역시 친구들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집으로 오는 차안에서 나는 스스로에게 다짐을 한다.
앞으로 더 힘들겠지만 절대 포기하지 않고 다 나아서 내년 봄에는 꼭 학교로 돌아온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