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암 환자를 진료할 때도 자주 보는 일이지만 상담실을 통한 진료상담을 받으면서 환자들이 정확한 의료정보 부족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새삼 느끼게 된다. 우리와는 많은 점에서 의료환경이 다르지만 미국에 있을 때 느꼈던 일 중에 환자들이 의사 못지 않은 의학정보를 갖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곤 하였다. 우리보다 훨씬 다양한 의료정보 제공 매체가 있기도 하지만 환자들이 자국어로 된 의학문헌을 들고 다니며 읽기도 하고 의사와 논의도 하는 광경을 흔히 보았다. 웬만한 전문의사들도 읽어야 할 근간의 리뷰 논문들도 그들에게는 그렇게 접하기 어려운 대상이 아니었다. 영어가 모국어이고 대부분의 의료정보가 영어로 된 문헌을 통해 전달되는 면도 있겠지만 자신의 병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알려는 노력이 돋보였다.
진료 상담실을 통해 흔히 접하는 질문들 중에 지금 어떤 치료를 앞두고 있는데 어떤 의료정보 사이트나 의료진은 다른 의견을 제시한다고 제2 의견(second opinion)을 묻는 경우가 많다. 사실 제2 의견은 환자들에게 뿐만 아니라 의사들에게도 중요할 때가 있다. 이렇게 제2 의견을 구하는 것은 정확한 진단, 최적의 치료방침 결정을 통해 환자들에게 최선의 진료를 제공하고자 하는 의료진 노력의 일환이며 환자나 의료진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기도 하다.
일반인들은 실감하기 어렵겠지만 조직검사를 했다고 해서 모든 경우에 정확한 진단이 쉽게 얻어 지지는 않는다. 이럴 경우 같은 병원 내 병리학 전문의사들이 조직표본을 돌려보며 의견을 교환하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내과, 소아과 등 임상의사들과도 토의해서 진단에 도움이 되는 소견을 찾기도 하고, 간혹 다른 병원 의사들과도 토의를 한다.
흔히 접하는 상담들 중에 급성골수구백혈병의 1차 관해인 환자가 동종 조혈모세포이식을 추천받았는데 꼭 시행해야 하는지, 자가 조혈모세포이식은 어떤지, 필요한지, 동종 조혈모세포이식을 대체할 수 있는지, 항암화학요법만 시행하면 안되는지 등에 관한 질문을 많이 받는다. 급성림프모구백혈병 환자들도 비슷한 상담을 한다.
비호즈킨 림프종, 호즈킨 림프종 등 악성 림프종 환자들도 1차 관해시에 자가 조혈모세포이식을 시행해야 하는지, 그냥 화학요법만 해도 되는지 등을 흔히 질문하며, 특히 재발하였을 경우의 자가 조혈모세포이식 필요성에 관하여도 질문을 많이 한다. 이런 질문들의 경우 의료진에 따라서도 다소 다른 추천을 하기도 하기 때문에 환자들이 겪는 혼돈과 당황은 어쩌면 당연할 수도 있다고 생각된다.
만성골수성백혈병은 이마티닙 (글리벡) 도입 이후 초기 치료에 관하여는 이론이 없어 졌지만, 2세대 치료제인 다사티닙(스프라이셀)과 닐로티닙(타시그나)의 개발 이후 어떤 경우에 이마티닙 치료를 포기하고 2세대 치료제로 바꿀 것인지, 바꾼다면 어떤 제제를 사용하여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이견이 있는 상황이다. 이들 치료제가 모두 만족스럽지 않으면 과거 만성골수성백혈병의 완치요법으로 이용되었던 동종 조혈모세포이식을 시행하여야 하는데 적절한 이식 시점을 결정하는 것도 중요하다.
다발골수종의 경우에도 지금까지는 표준 치료지침이 관해 유도후 자가 조혈모세포이식이지만 탈리도마이드, 볼테조밉 등 새로운 항암치료제의 개발로 미래의 적절한 치료방침 결정은 아직도 많은 연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조혈모세포이식을 시행하더라도 골수 조혈모세포를 이용할 것인지, 말초혈액 조혈모세포를 이용할 것인지, 동종 조혈모세포이식을 받는 환자에서 형제자매 중 HLA형이 완전히 일치하는 공여자가 없을 경우, 비혈연 공여자를 선택할 것인지, 부분일치 형제자매 공여자를 선택할 것인지, 또는 최근 활성화되기 시작한 제대혈을 이용할 것인지 등, 최적의 치료방침결정을 위해서는 많은 선택을 하여야 한다.
급성골수구백혈병에서는 국제적으로 고위험군, 표준위험군, 저위험군 별로 완전관해 후 치료지침이 권고되고 있으며, 급성림프모구백혈병에서는 고위험군 및 표준위험군 별로 권장 치료지침이 마련되어 있다.
비호즈킨 림프종 중 가장 흔한 미만성 대세포B림프종에서는 고위험군 환자의 1차 관해시와 재발한 환자들에서 자가 조혈모세포이식이 추천되고 있다. 다발골수종에서는 탈리도마이드, 볼테조밉을 어떤 시기에 사용하는 것이 적절한지, 자가 조혈모세포이식이면 충분한지, 그것도 한번 아니면 두번 시행해야 하는지, 어떤 경우에는 동종 조혈모세포이식을 시행하는 것이 바람직 한지에 대해서 연구가 진행 중이다.
만성골수성백혈병은 국제적으로 이마티닙에 치료반응이 불만족스러운 경우, 이마티닙에 내성인 경우의 정의에 대한 대체적인 의견 접근이 있어 치료지침으로 이용되고 있다. 그러나, 적절한 2세대 치료제의 선택에 대해서는 아직도 명확한 치료지침을 정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러한 의료진과 환자들의 치료선택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하여 국내외의 전문학회를 중심으로 치료 가이드라인이 제정되어 도움을 주고 있다. 대한혈액학회 만성골수성백혈병연구회(CML Working Party)에서는 이마티닙이 도입된 후 만성골수성백혈병 치료지침을 정하여 권고하고 있으며, 곧 2세대 치료제를 포함한 개정안을 마련 중에 있고, 대한혈액학회는 다른 혈액질환들에 대해서도 치료지침에 관한 컨센서스를 도출하려는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의료보험 규정도 치료방침을 결정하는데 무시하지 못할 조건 중 하나이다. 가장 치료성적이 우수한 치료법으로 인정받는다 해도 의료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면 대부분의 신약이 고가인 점을 감안할 때 실제 환자들이 이용하기는 어렵다. 현재 의료보험 규정 중에는 합리적이지 못한 규정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한 예로, 저위험군 급성골수구백혈병의 경우 1차 관해시에는 동종 조헐모세포이식이 의료보험이 되지만 재발하면 2차 관해가 되어야만 의료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저위험군 급성골수구백혈병은 항암화학요법으로 장기생존율이 60-80%에 이르고 특히 급성전골수구백혈병은 완치율이 90% 이상이어서 동종 조혈모세포이식이 필요하지 않다. 따라서 저위험군 급성골수구백혈병 환자에서는 재발되지 않는 한 동종 조혈모세포이식이 국제적으로도 추천되지 않는데, 후에 재발하면 관해가 되지 않는 이상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꼭 필요하지 않은 환자들도 동종 조혈모세포이식을 받게 되는 모순이 생길 수 있다. 이는 국가 재정상으로도, 최적의 환자 치료방침 결정이라는 면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특히, 자가 조혈모세포이식 등 치료효과가 확실히 증명되지 않은 이식도 보험이 되는 실정을 감안하면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다행스러운 것은 이러한 의료진들의 의견이 반영되어 조만간 보험규정 개정 작업이 이루어 질 전망이다.
치료방침을 결정하는데는 의료진의 판단과 성향도 크게 영향을 미친다. 국내에도 널리 알려진 미국의 한 유명 암센터의 C교수팀에서는 일부 조혈모세포이식 성적이 항암화학요법 보다 더 불량한 것이 알려진 일부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환자들에서 조혈모세포이식을 시행하지만, 같은 병원의 K교수팀은 꼭 해야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가급적 조혈모세포이식을 시행하지 않는다. 특정 의료진에서 교육받은 의사들은 다른 병원에 옮겨서도 비슷한 진료성향을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 국내에서도 의료기관마다 치료방침에 대한 설명이 다른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환자들은 이런 점들을 이해하고, 특정 질환의 특정한 경우에 어떤 치료법들이 있으며, 각 치료에 따른 합병증, 비용 등 장단점과 예상되는 치료성적은 어떤지 등을 잘 알아 본 다음 자신이 원하는 치료법을 선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모든 의료행위 시행시 강조되고 있는 진료방침 결정에 환자 참여(shared decision)의 중요성은 충분히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
금년 "혈액질환 알아야 이긴다"에서는 혈액질환 환자들이 흔히 부딪치는 치료방침 결정에 관한 문제들에 관하여 객관적인 자료, 국제적인 컨센서스에 입각하여 알아 볼 것이다. 환자와 가족들의 판단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 서울대학교병원 혈액종양내과 박선양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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