림프종관련/도움되는 정보

[스크랩] 암 생존자로 살아간다는 것

홍바라기의 love lettet 2014. 11. 13. 22:22

웃고 있는 아버지와 아이 사진

인터넷으로 외국 서적을 검색하다 보면 <치료가 끝나고 새로운 인생이 시작될 때를 위한 생존자들의 가이드(A Survivor's Guide for When Treatment Ends and the Rest of Your Life Begins)>류의 책들이 많이 출판되고 있다. 암 생존자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이들을 위한 안내서가 필요하다는 사회적 요청이 높아지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 같다.

하지만 아직 우리나라의 의료현실에서는 암 생존자에 대한 개념이 이제 막 자리잡고 있는 수준이라, 아직까지 이들에 대한 체계적인 지침서는 없는 실정이다. 환우회나 동우회에서 환자들끼리 정보를 소통하는 정도로 자신이 개발한 노하우를 전달하며 도움을 주고 받는 정도다.

암 생존자(cancer survivor)라는 개념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게 된 것이 비교적 최근 일이기 때문에 암 생존자에 대한 정의 또한 다양하게 제시되고 있다. 미국암학회(ACS)에서는 과거에 암으로 치료받았지만 완치되어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으로, 암 진단 후 일차 치료를 통해 암이 치료된 사람 뿐만 아니라, 현재 암이 진행되고 있는 상태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환자, 완치 목적이 아니더라도 현재 암에 대한 치료를 받고 있는 사람을 모두 생존자의 범주 안에 넣고 있다.

이들 개념 정의에 따르면 말기 암환자로 판단되어 치료를 목적으로 한 항암치료나 수술을 받지 않기로 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두 암 생존자라는 개념으로 포괄된다. 이제 인생에서 암을 진단받고 치료 과정을 겪는다는 것은 단지 병을 앓고 지나가는 것을 넘어선 ‘실존적인 사건’이다. 따라서 치료를 종결한 환자라도 심리적, 육체적, 사회적 변화를 경험하며 자기를 극복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 영향은 사람마다 차이가 있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신체적 불편감의 강도가 약해지겠지만, 암 생존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 생존자들의 2가지 숙제, 육체적 힘듦과 재발의 두려움

치료 기간이 길거나 치료의 강도가 셀수록 환자의 이전 생활과 치료 후의 생활 사이의 단절이 심각하다. 예를 들면 암 치료 후 환자들은 상당 기간 동안 육체적 피로함을 경험한다. 피로함(fatigue)은 암 치료 후 상당 기간 해결되지 않고 오랫동안 남아있는 대표적인 부작용이다. 조금만 걸어도 주저앉고 싶고, 때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무기력증에 시달리기도 한다.

특히 완치를 목적으로 광범위한 절제 수술을 받은 후에는 해당 장기의 기능이 정상적으로 돌아오게 되기까지 주변 기관으로부터의 보조적인 지원을 받게 되고 이러한 보상 작용이 지속되는 한 만성적인 피로함을 느끼게 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매우 적극적인 재활 훈련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항암치료를 받은 환자의 경우 항암제의 영향이 뇌기능에 영향을 미쳐 ‘케모 브레인(chemo brain)’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뇌 신경세포의 피로감이 쉽게 극복되지 않는다. 젊은 암 생존자들은 어느 정도의 기간까지 아이를 가질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암 생존자들은 육신의 고달픔뿐 아니라 정신적인 상처도 감내해야 한다. 의학적으로는 완전히 나았다고 판정 받았다 하더라도 생존자는 자신의 생명을 위협하는 사건을 겪었다는 것 자체가 큰 충격이기 때문에 질병 경험이 정신적 외상(trauma)으로 남는 것이다. 따라서 정서적으로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겨낼 수 있는 시간과 환자 자신의 끈질긴 노력이 필요하다. 5년 이상 재발하지 않고 생존하고 있는 사람들도 암을 진단받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40%이상 더 심각한 심리적, 사회적 스트레스를 경험하고 있다는 보고도 있다. 때론 이와 같은 스트레스가 우울증의 형태로 표출되기도 한다.

전체적으로 암환자의 10%가 주요 우울증을 진단받는다고 알려져 있고, 상당수의 암환자가 치료 전후로 적응장애(adjustment disorder)를 경험한다. 한 연구에 따르면 젊은 암 생존자들 가운데 20%가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로 진단받으며 나머지 환자 중 45~95%에 가까운 환자들은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로 진단되는 것은 아니지만 유사 증상을 한 가지 이상 가지고 있다고 보고하고 있다.

암 생존자들은 다른 인구 집단에 비해 자살 충동도 더 많이 느낀다. 가장 큰 원인은 바로 ‘재발의 두려움’이다. 암 생존자들은 아주 사소한 증상의 변화에도 암이 재발했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끼게 되고 평생 낫지 못할 거라는 생각, 아무런 예고 없이 암이 다시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사실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 생존자로서의 불편함 있어도, 삶은 고귀하다!

암 생존자들은 일상으로 완전히 복귀하고 싶어하지만, 여전히 일반인들과는 다른 암환자로서의 여러 가지 의무와 불편함이 따르는 것은 사실이다. 그럴수록 정기적으로 병원을 방문해 적절한 모니터링을 받아야 한다.

방사선 치료를 받은 경우라면 방사선 폐렴이 발생할 수도 있다. 마른 기침과 가끔씩 숨이 차면 빨리 병원에 가서 가슴 엑스레이를 찍고 스테로이드를 먹으며 새로운 부작용에 대한 치료를 재개해야 한다. 호르몬 수용체가 양성인 젊은 유방암 환자들은 정기적으로 여성호르몬 수치를 체크하여 몸을 폐경기 여성처럼 유지하는 것이 재발 방지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항호르몬제를 복용하게 되는데, 이를 복용하기 시작하면 한동안 안면홍조나 관절통 등 폐경기 증상을 겪게 된다. 그런 증상을 느낄 때마다 이들은 자신이 유방암 환자라는 사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딜레마는 여기에서 시작된다. 암 치료를 무사히 다 마쳤는데도 건강염려증 환자가 되어 병원을 전전 긍긍하며 재발 위협에 대한 노예가 되어 살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일반인으로 돌아와 일상에 충실한다는 신념 하에 정기적인 모니터링이나 몸의 변화를 무관심하게 방치해 둘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암 생존자들은 늘 이 두 가지 상황에서 밀고 당기기를 하며 이러한 갈등을 마음 속에 품은 채 살아가고 있다.

재발의 두려움, 그것은 단지 믿음과 격려만으로 극복되는 것은 아니다. 일종의 극복 프로그램이 필요하고, 그 과정을 함께 하는 동료가 필요하다. 대규모 연구는 아니지만 명상 프로그램을 통한 자기 스스로를 돌아보기 시간은 불안과 우울을 감소시키는데 효과적이며, 요가 등 가벼운 운동을 통해 몸의 활력을 되찾는 노력은 그 어떤 약보다도 효과적으로 환자의 육체적, 정신적 피로감을 극복하는데 도움을 준다고 되어 있다.

무엇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그렇게까지 살고 싶어하는 이 인생의 의미와 희망이 무엇인지 점검해 보는 것이 아닐까? 모든 것이 마음먹기에 따라 달라진다고 할 수는 없지만, 마음을 잘 먹으면 많은 어려움을 긍정적으로 헤쳐나갈 수 있다.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실존의 무게와 외로움, 그러나 나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일깨워주는 가족과 동료들의 사랑, 그것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생존자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생존자 스스로 자아를 강화하는 것 뿐 아니라 그들 주위에 존재하고 있는 가족, 친지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이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용기와 희망은 누가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이들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평생의 노력이 필요할 지도 모른다. 그래도 가야 한다, 그 길을.


△ 작성: 이수현 (세브란스병원 종양내과 임상조교수)
이화여대 물리학부 졸업, 서울대 대학원에서 사회학 석?박사 과정 수료 후 다시 연세대 의대에 입학해서 의학을 공부한 늦깎이 의사. 훗날 두 전공을 살려서 사회과학적 상상력으로 현재의 의료시스템에 대안을 제시할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한다. 저서로는 유방암에 걸린 후배 의사와 함께 쓴 <한쪽 가슴으로 사랑하기>가 있다.

출처 : 김소장의 통합의학 암 연구소
글쓴이 : 현경아빠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