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풍경/시를 잊은 시인

아버지

홍바라기의 love lettet 2022. 1. 31. 17:01

아버지 / 서창범

 

 

1월의 겨울 밤

어두운 골목을 뚫고 길가에 섰다

태어나곤 처음으로

아버지의 귀가를 기다렸다

여느 때 보다 세차게 부는 바람이

뺨을 때리고 살을 에고 있었지만

느끼진 못했다

 

흐릿한 눈발로

은하수의 별들을 찾아 헤어가며

은행나무를 벗 삼아 기대였다

몽롱해져 가는 정신이

밤 중 고요를 깨고 들려오는

엠블런스의 괴음에 강타되었다

들것에 실려 가물가물 숨쉬며

마지막 집을 찾는 아버지의 육신과

눈물조차 말라버린 어머니의 한에

어느 듯

가슴은 찢어졌다

 

위태위태 그의 손을 부여잡고

재 되어 스러지는

체온을 감지했다

무언(無言)의 연속에서 서로의 눈을 주고받았다

이 밤

할 말은 많은데

무어 그리 바빴던지

재촉 심한 사자의 등쌀에

나의 손을 맥없이 뿌리쳤다

 

구슬픈 여인의 울음소리에

시계 소리가 잠들고

눈만은 감겨졌지만

심중에 무슨 말이 남았길래

입은 기어이 닫히려 하지 않고

꽁꽁 묶인 육신과

발부터 올라온 흰 천이

이별을 대신 알렸다

 

아버지는 꼬박 이틀 동안을

얼마나 피곤했던지

울음바다가 된 방안에서

잠만 자고 나선

다음날 아침

할머니가 계신 산 속으로

묵묵히 길을 떠나셨다

 

아버지가 할머니의 아들로 되돌아가시던 날

그날 밤

7년 만에 이루어진

모자 상봉의 긴 울음소리가

내리는 눈을 녹이고 말았다

어둠속에서 아무도 모르게

천상과 지상에 전화선이 놓여진 것이다

 

오늘 토요일 저녁

다시금 은행나무를 벗삼아

집 앞 그 도로에서

비를 맞으며

아버지를 기다린다

 

아버진

아버지라 불리기보다

아들이 더 좋은지

밤이 이슥하도록 오시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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