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풍경/내가 좋아하는 시 100선

[시 100선] 17. 독(毒)을 차고 /김영랑

홍바라기의 love lettet 2022. 3. 13. 09:49

독(毒)을 차고 /김영랑

 

내 가슴에 독을 찬 지 오래로다.
아직 아무도 해(害)한 일 없는 새로 뽑은 독
벗은 그 무서운 독 그만 흩어버리라 한다.
나는 그 독이 선뜻 벗도 해할지 모른다 위협하고,

 

독 안 차고 살어도 머지 않아 너 나 마주 가버리면
억만 세대(億萬世代)가 그 뒤로 잠자코 흘러가고
나중에 땅덩이 모지라져 모래알이 될 것임을
'허무(虛無)한듸!' 독은 차서 무엇하느냐고?

 

아! 내 세상에 태어났음을 원망않고 보낸
어느 하루가 있었던가, '허무한듸!' 허나
앞뒤로 덤비는 이리 승냥이 바야흐로 내 마음을 노리매
내 산 채 짐승의 밥이 되어 찢기우고 할퀴우라 내맡긴 신세임을

 

나는 독을 차고 선선히 가리라
막음 날 내 외로운 혼(魂) 건지기 위하여.

 

※ 1939년 <문장>에 발표한 시입니다. 처음 <독을 차고>라는 제목을 들었을 때 독을 옹기로 생각하며 옹기로 만든 작은 술항아리를 허리춤에 찼겠지 생각했는데 첫구절을 읽으면서 독은 우리의 생명을 앓아갈 수 있는 독약을 말하고 있음을 그리고 시인은 시에서 그런 독을 섬뜩하리만큼 가슴에 품고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시인은 가슴에 왜 독을 차고 살아갈까요? 그

독은 잘못하면 자신도 해할 수 있고 친구도 해 할 수 있으며 타인도 해할수 있는데 말이죠.
시인에게서 독을 차는 이유는 시대적인 요인으로는 일제시대에 한민족으로서의 자존감을 지키고 민족을 배신하지 않고 살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며 인간적 본성의 차원에서 들어가면 독을 차고 살아가는 것은 도를 찾아가는 과정이며 그 과정에서 자신이 삿된 유혹에 빠지지 못하게 하는 자구책임을 시인은 마지막 연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나는 독을 차고 선선히 가리라
막음 날 내 외로운 혼(魂) 건지기 위하여.

 

품안에 간직한 독은 시인이 타락의 길에 빠졌을때 그가 사용할 수 있는 최후의 보류이며 최후의 선택일 수 있는 극단적인 방법입니다. 그러나 독을 항상 차고 있다는 이야기는 결국 그 독을 보면서 매일 매일 나는 독을 사용하지 않는 삶을 살겠다는 시인의 다짐이 있는 선언이며 그만큼 시인은 삶에 대한 애착과 민족에 대한 지존을 지키며 굳건히 살겠다는 저항정신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무릇 독은 아니겠지만 우리도 살아가면서 나를 유혹하는 것으로부터 나를 흔들리지 않게해줄 삶의 가치 하나가 있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