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풍경/내가 좋아하는 시 100선

[시 100선] 16. 모란이 피기까지는 / 김영랑

홍바라기의 love lettet 2022. 3. 13. 09:36

모란이 피기까지는 / 김영랑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네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 김영랑시인(1903.1.6~1950.9.29)은 전라남도 강진군에서 태어났으며 본명은 윤식, 영랑은 아호로 시문학에 작품을 발표할 때부터 사용하였습니다.

1919년 휘문의숙 3학년에 재학 중이던 때 독립선언서를 숨겨 들고 고향 강진으로 내려와서는 만세운동을 일으킬 것을 계획하였으나 거사 전에 일제에 발각되어 체포, 재판을 받고 항고 끝에 무죄선고를 받고 이후 1920년 일본으로 유학하였다 관동대지진으로 1923년 학업을 중단하고 귀국하였으며 유학 중에는 아나키스트 박렬과 교류도 하였습니다.


1930년 정지용과 함께 박용철이 주재하던 <시문학> 동인으로 참여하여 <독(毒)을 차고>, <가야금>, <달마지>, <춘향>등 일제의 식민통치에 대해 저항의식을 표출하며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시를 위주로 발표하였습니다.

일제 강점기 말기에는 절친했던 이광수나 서정주가 친일로 돌아선 것과는 대조적으로 창씨개명과 신사참배를 거부하며 절필로 해방이 오기까지 일본어로 된 단 한줄의 글조차 적지 않겠다고 선언합니다.

 

유복한 집안 출신이었던 덕분에 비교적 여유 있는 삶을 살다가 6.25 전쟁이 발반하여 서울 수복 다음날이었던 1950년 9월 29일 대문을 열고 나서다 퇴각하는 인민군이 쏜 유탄에 사망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모란이 피기까지>는 1934년 <문학>에 발표한 시로, 김영랑 시인은 발표한 시에 제목을 한 번도 붙인 적 없으며, 이 제목은 가제이고 그의 시집을 보면 제목 자리에 번호만 붙어 있기에 통상 첫 줄의 구절을 제목으로 뽑아 사용하고 있습니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서정시이며 전통적 풍경과 향수가 잘 그려지고 더 세분하여 살펴보면 남성적인 서정과 청춘의 서정보다는 성숙고 원숙한 서정이 느껴집니다. 이는 소월이나 윤동주가 20대 초반에 시를 쓴 것과 시간차로 김영랑 시인이 30대에 쓴 시로 시인간의 경험과 세대차가 미묘하게 반영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시인은 절망에 빠져서

/ 뻗쳐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 삼백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네다 /

라고 선언합니다.

하지만 시인의 마음은 슬픔에서 마냥 머무르지 않고 다시 일어나
/모란이 피기까지는/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이라며 그의 기다림과 의지를 다짐하며 시를 맺습니다.

 

우리 삶에서 한번쯤은 만날 모란은 무엇이고 누구일까요?
독립운동가에게 모란은 잃어버린 조국이요,
사랑하는 연인에게서 모란은 님이요,
시인에게서 모란은 시요
탐험가에게서 모란은 미지의 세계요.
모란은 우리가 꾸는 꿈일게인데 당신의 꿈은 무엇인지 한번 기억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