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딸에게
어제의 기쁜 소식과 함께 지금 창원에는 새벽부터 흰 눈이 내리고 있단다
출근길 풍경은 온 세상이 모두 다 흰 눈으로 덮이고 아빠는 두터운 파카 점퍼에 우비까지 단단히 갖추어 입고 걸어서 회사에 출근했단다. 출근하면서 간간히 나뭇가지에 쌓인 눈도 보고 지각할 생각 보다는 사람들이 밟지 않는 새하얀 길만 밟고 왔단다. 눈 쌓인 길과 나무가 참 아름답구나
그 덕분에 5분 지각했지만 그래도 좋았어
여유를 부리고 그렇게 길을 가다가 잠시 멈추어 자연을 바라봐도 그 시간은 5분이면 충분하다는 것을 확인하는 좋은 기회였으니까
눈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홍비야 !
니가 있는 부산에는 지금 비가 내린다면서 ?
아빠가 보내준 눈이랑 눈사람 사진보고 시무룩하게 있는 것은 아니지? 심술나서 엄마한테 " 나 밥안 먹어 " 하지는 않겠지. 아빠가 회사 일찍 마치고 니가 있는 병원으로 눈을 몰고 갈테니까 오늘은 밥도 잘 먹고 치료도 잘 받아야 한다
사랑하는 홍비야 !
오늘처럼 세상이 흰 눈으로 덮이니 세한도가 생각나는구나
세한도(歲寒圖)는 조선시대 추사 김정희(金正喜,1786〜1856)가 그린 그림으로 국보 180호로 지정되어 있단다. 커다란 흰 종이 위에 초라한 집 한 채와 고목(古木) 4 그루가 한 겨울 추위 속에 떨고 있는 그림이지
사람들은 세한도에 대해서 '여백의 미가 좋다', '지조 있는 선비의 절개가 느껴진다', '김정희와 그의 제자인 이상적 이란 사람과의 우정이 아름답다'고 하지만 아빠는 세한도에서 지독한 고독이 보인다
오랜 동안 유배지에서 홀로 생활하며 친한 친구 김유근의 죽음도 듣고 또 사랑하는 아내와도 영원히 이별하고 말았단다. 정치 생활을 하던 수도 한양의 소식도 점차 사라져가고 오직 책을 벗 삼아 지낼 뿐이었단다.
화려한 도시의 삶을 살다가 자기 의지가 아닌 정치적 상황으로 변두리로의 유배
그래서 그 지독한 고독을 그림 속에 그려서 자기를 알아주고 잊지 않은 제자 이상적에게 선물하지 않았나 한다.
사랑하는 홍비야 !
아빠는 너의 웃는 얼굴에서 가끔 외로움이 보인단다.
하지만 김정희에게 이상적이란 제자가 있듯이 홍바에게는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이 있잖니?
그러니 너는 '행복한 홍바'란다
오늘은 흰 눈이 펑 펑 내리는 좋은 날이니 홍비의 앞길도 행복으로 가득할 것이란다.
눈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눈이 큰 아이, 홍비
아빠가 많이 많이 사랑한단다
사랑해 홍비~
2012년 12월 28일
사랑하는 아빠가
'독백 > 홍바라기의 love letter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리도 의좋은 부녀 사이가 맞지(love letter 89) (0) | 2012.12.30 |
---|---|
애기가 되어버린 내 딸 홍바(love letter 88) (0) | 2012.12.29 |
아니 아니 아니되오(love letter 86) (0) | 2012.12.27 |
예나 지금이나 미녀는 괴로워(love letter 85) (0) | 2012.12.26 |
크리스마스인데 그때가 그리워지는구나(love letter 84) (0) | 2012.12.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