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딸에게
며칠 동안 많이 힘들었지?
밥 한 숟가락 뜨기 위해 한참을 바라보다가 겨우 입 안에 쌀 몇 톨을 넣으며 애쓰는 니 모습을 지켜 보기만 하는 엄마와 아빠를 용서해줘.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하늘도 홍비가 눈을 좋아하는 것을 알고 있는지 창원의 눈이 녹지 않고 홍비를 기다려 주었더구나. 군데 군데 공터마다 만들어 놓은 눈사람이 참 예뻣지.
눈이 많이 내려서 고생하는 윗 지방에서는 아마 이런 풍경이 드물 것 같구나
그리고 아빠가 만든 것보다 더 큰 눈사람을 만들어 사진 찍어 보낸 니 남자 친구에게 " 제일 먼저 눈사람 만들어 사진 찍어 보낸 사람은 울 아빠 "라는 말 꼭 전해 주기 바란다
사랑하는 홍비야
어제 밤에는 지난주에 찍은 CT 영상을 의사 선생님과 봤단다. 복부와 비장에서는 사라져서 거의 자취를 찾기 힘들었고 폐쪽에도 처음에 크게 있었던 녀석이 이제는 아주 작은 놈으로 되어 있었단다.
그리고 쇄골 주변 부위도 더 이상 보이지 않고 조직검사한 목부위는 10월달과 동일한데 아마 처음 생검시 제거한 놈들의 죽은 흔적인 것 같구나. CT 소견서도 나아지고 있다는 소견으로 되어 있었단다
하지만 아빠는 항암 치료 1번만으로도 우리 딸 몸에 있는 암세포가 전혀 보이지 않기를 바라고 기도했었는데 조금은 아쉽단다. 사실 이번에는 기대를 좀 했단다.
의사 선생님께서 '아버님 기적입니다. 이렇게 짧은 시간에 암세포가 보이지 않는 것은 처음입니다' 하며 놀라운 표정으로 아빠에게 소식을 전해주기를 바랬는데 이런 아빠가 결코 욕심쟁이는 아니겠지
이번에 또 한번의 치료를 마쳤으니 3번의 치료만 남았구나. 이제 너는 축하의 꽃다발을 목에 거는 일만 남아있기 때문에 우리 2달만 더 지금처럼 힘내고 잘 이겨 내자구나.
사랑하는 딸을 위해서 아빠가 반드시 꽃다발을 준비할테니 너는 그 영광만 누리도록 하여라
사랑하는 홍비야
병원에서 돌아와 엄마 품속에 꼭 안겨 잠들은 지금 니 모습 참 예쁘구나
' 애기가 되어버린 내 딸 홍바 '
살포시 감은 눈과 짙은 눈썹, 입가에 살짝 뛴 미소, 조용한 숨소리
모든 것이 어둠에 쌓여서 고요한 이 밤, 아빠에게는 홍비 모습과 홍비 숨소리만 들리고 그것들에 가슴 떨려 잠 들지 못할 것 같구나
아빠한테서 홍비는 100살이 되어도 영원히 아기이고 밤에 잘 때 한번씩 깨어 이불 잘 덮었나 살펴봐야 하는 소중한 아이란다
오늘밤은 편안히 잘 자
사랑해 홍비~
2012년 12월 29일
사랑하는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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