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딸에게
겨울이고 토요일이라서 지금 회사는 조용하구나
조금 전 아빠가 있는 사무실에 두 사람이 주중에 못한 일을 마무리하기 위해 출근하였구나
아빠는 지금 회사에서 당직 중
당직이란 일하지 않는 휴일에 순번을 정해 한 사람씩 회사에 나가서 회사의 상태도 점검하고 중요한 일이 생기면 처리하고 비상연락망을 통해 알리는 임무를 한단다
너 방학 때마다 한번씩 학교에 나가는 당번과 같은 것이란다
사랑하는 홍비야 !
오후에는 구미에 사는 이모가 외갓집에 온다면서…….
너도 많이 보고 싶어 했는데, 오늘은 이모랑, 사촌동생인 연아, 연준이 보러 가겠네
동생들이랑 재미나게 놀아주고 아빠 보고 싶으면 텔레파시 보내줘. 달려갈테니
'찌리찌리 ~ 아빠 나와라 ㅋㅋㅋ. 빨리 홍바 있는 곳으로 와라 ! 오바~'
아침에 출근하는데 홍비가 아빠에게 보고 싶은 마음에 대한 말을 했잖니
" 가끔은 보는 것 보다 보고 싶은 마음을 간직하는 것이 더 좋을 때가 있다 "
나이가 1살 더 들더니 어엿한 숙녀가 되고 시인이 되는가 보다
아빠는 니 말에서 피천득의 '인연'에서 나오는 아사코와의 만남 장면 그리고 작가의 독백이 생각나는구나
' 아사코와 나는 세 번 만났다. 세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
그래 인간의 만남에서 특히 사랑하는 사람들끼리는 서로 좋은 모습만 간직하고 담으려 하는 염원이 있단다
그것은 우리가 아름다운 추억을 간직하고 싶어 하는 소망이겠지.
하지만 살다 보면 때론 다투고, 미워하고, 등 돌릴 때도 있고, 변해가는 친구의 모습을 안타까워 할 때도 많단다. 이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경험하고 받아 들여야만 진정 아름다운 추억을 간직할 수 있는 것 아닌지 아빠는 생각한단다
이왕 말이 나온 김에 친구와의 관계에서 '고슴도치의 거리'란 말이 있단다
추운 겨울날 동굴에 고슴도치들이 있었단다
추워서 옹기종기 모여 있지만 너무 멀리 떨어져 있으면 서로의 온기를 나누지 못하고 또 너무 가까이 있으면 서로의 가시에 찔려서 상처를 받는다고 한단다
사랑과 나눔을 하되 너무 안으로 들어와서 간섭을 하다 보면 서로의 가시에 찔려서 상처를 받고 또 그렇다고 너무 멀리 떨어져 오랫동안 만나지 않고 연락도 없다면 친구로서 존재감이 사라질 수 있다는 이야기인데 찔리지 않고 최대한 가까이 갈 수 있는 거리가 어디쯤인지 아빠도 아직은 잘 모르겠구나
차라리 고슴도치처럼 가시라도 있다면 거리를 가늠할 수 있을텐데 사람의 마음이란 보이지 않는 가시이고 그 거리고 제 각각이란다.
오직 이 거리를 짐작할 수 있는 방법은 서로 많은 대화를 하고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길이 아닐까 한다
오늘도 아빠의 편지가 또 멀리까지 왔구나
우리딸과 좋은 관계를 위해서 훈계하는 말은 이쯤에서 마쳐야겠지 ㅋㅋㅋ
사랑하는 홍비야 !
오후에 이모 만나면 맛있는 것 많이 먹고 동생들이랑도 재미나게 놀거라
니가 즐거우면 아빠도 즐겁고 니가 슬프면 아빠도 슬프단다
그리고 방학한지 꽤 시간이 지났으니 이번에는 친구들 얼굴도 한번 보고 그렇게 하여라
그동안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든 것은 아닌가 한다
오늘도 사랑해~ 홍비 !
2013년 1월 5일
사랑하는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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