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암은 구호의 대상을 넘어서 어울림의 축제가 되어야 합니다.
1950년대 미국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한 소아암에 대한 연구와 지원은 순수한 의사들의 아이에 대한 사랑과 안타까움에서 출발하였다. 당시에만 하여도 소아암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백혈병과 림프종은 의사가 손 쓸 겨를도 없이 아이들에게 초췌하고 죽음과 막닥트리게 하였다.
싯다르타 무르케지가 지은 '암:만병의 황제의 역사'란 책의 본문에는 이런 문구가 있다.
'.....내가 본 가장 애처러운 광경 중의 하나는 걸대에 높이 걸린 약병에 약물이 똑똑 떨어져 들어가는 바늘을 팔이나 다리의 정맥에 꽂고 단단히 붕대로 고정시킨 어린아이가 보행기를 타고 있는 모습이다. 그것들은 결합되어서, 돛대는 있지만 돛은 없이 해도에 없는 거친 바다를 홀로 하릴없이 떠다니는 작은 배를 떠올리게 한다.'
이런 모습을 본 의사와 정치인이 결국 손을 잡고 시작하여 완성한 일이 Jimmy기금에서 출발하여 소아암 병원을 짖고 이후 암과의 전쟁을 선포한 NCI의 탄생이었다.
지금까지도 많은 자본이 들어가고 또 암과의 전쟁이 끝나지 않았다. 또한, 암은 아직까지도 그 원인이 밝혀지지 않고 치료법만 나와 있는 상태이지만 다행이 소아암의 완치율은 해를 거듭할수록 진단기술의 발달과 함께 높아져가고 있다.
이제 선진국에서는 소아암 아이들에 대한 인식이 구호의 대상을 넘어서 완치와 어울림의 대상으로 바뀌었고 지원 및 연구조사부문에서도 장기생존률에 따른 사회적 복귀와 지원에 맞추어져있다.
일본의 경우만 하여도 소아암은 원인이 밝혀지지 않는 질병으로 사회 구성원 전체가 책임져야 할 질병으로 인식되고 합의가 이루어져서 소아암 아이들의 의료비문제가 정부차원에서 해결되고 있다.
하지만 2013년 대한민국의 소아암 아이들의 현주소를 살펴보면 아직도 소아암=구호의 대상에서 머물고 있다.
각 종 방송이나 매스컴을 통해 나오는 소아암 아이들의 모습도 초췌하고 죽음과 사투를 벌이면서 치료비와 힘겹게 싸워가는 가족의 모습이 전부다.
이것은 이 아픈 아이들에 대한 인식이 1970년대 즈음에 머물러 있고 소아암 아이들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교육의 아버지하면 '페스탈로치', 백의의 천사 '나이팅게일', 흑인인권운동가하면 '마틴루터 킹'박사등 어느 일과 사건에는 그것을 대표하는 누군가의 이름이 떠오르지만 현재까지 소아암을 대표하는 대표자는 순수한 마음이 동한 무명의 기부자가 전부이다.
소아암 아이들은 높은 완치률로 인해 치료가 종결되면 다시 학교로 복귀하고 성인이 되어 사회로 복귀하고 있다.
하지만 치료 중에 교육받을 권리의 침해와 학업의 공백으로 인한 대학진학문제, 암에 대한 부정적인 사회적인식으로 인해 일자리를 통한 자본의 획득과 결혼 및 사회진출에 많은 제약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라는 나무라고 하였지만 유독 대한민국의 독립과 민주주의가 자리잡기까지는 많은 어린 학생들의 피가 뿌려졌다. 3.1 만세운동이 그랬고 4.19 역시 비겁한 어른들이 학생들의 뒤에 숨었다.
이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아픈 아이들마저 어른들의 앞에 세울수는 없을 것이다.
만약 나는 성숙한 사회의 한 사람의 구성원이고 소아암 아이들에 대한 어울림과 미래를 걱정한다면 여러분은 이제 소아암 아이들의 아버지, 어머니가 되어주고 그들의 천사가 되어서 여러분의 이름을 앞에 내새워 주십시오.
그래서 이 사회에서 소아암은 구호의 대상을 넘어서 어울림의 축제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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