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림프종 공부를 시작하다
아는 것이 힘이다
Writted by 홍바라기
암이란 단어를 우리가 접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가 무엇일까?
길을 걷다가 예기치 못한 강한 충격에 눈앞이 깜깜해지듯이 나와 사랑하는 아이 그리고 내 가족에게도 이런 현상이 다가왔다.
첫 항암치료를 하기 전까지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과연 항암치료를 해야할지?', '아님 다른 대체의학은 없는지?' 질문의 질문이 연속되는 날들이 흘러가고 있었다.
그리고 생각하기도 싫었지만 나에게도 조금씩 "죽음" 이라는 단어를 되뇌이곤 하였다.
'얼마나 살 수 있을까?'
하지만 이런 질문은 아주 잠시 동안이지만 정말 필요가 없는 소모성 전투와 같았다.
왜냐하면 사랑하는 내 아이는 반드시 어떤 부작용도 없이 완치가 되어야하고 또 살려야만 했다. 그것이 부모로서 나의 명(命)이였고 나의 의무였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이 부분은 나 뿐만 아니라 모든 소아암 부모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적인 생각일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암환자나 그 가족을 보면 두 부류의 집단이 있다.
자신이 앓고 있는 암종에 대해서는 많은 시간을 투자하며 공부를 하는 것 보다는 편안한 마음으로 병원의 표준치료(수술, 항암, 방사선)를 받는 부류가 있는가 하면 각종 서적과 자료들을 찾고 병원의 표준치료뿐만 아니라 통합의학(Integrative Medicine)적인 접근을 시도하며 본인이나 가족이 암이란 질병에 적극적인 개입을 하는 부류가 있다.
나는 후자에 속했다.
분명 암환자에게서는 '모르는 것이 약이다'라는 속담보다는 '아는 것이 힘이다'가 도움이 된다.
지금도 만약 누군가 나에게 조언을 구한다면 나는 주저않고 '아는 것이 힘이다'라고 말을 할 것이다. 단, 보충하자면 암환자의 경우에는 운동 및 식생활 습관과 같이 자신의 몸관리와 체력에 신경을 쓰고 암에 대한 공부는 그 가족이 맡아서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어쨌던 나와 딸 그리고 내 가족은 이제 암과의 전쟁을 해야만 하고 이 전쟁에서 반드시 승리를 해야만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아이가 앓고 있는 암에 대한 지식뿐만 아니라 표준치료와 여러 사람들이 걸어 온 길에 대해서도 섭렵을 하고 알아야 했다.
암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책들을 읽고 림프종에 관해서는 미국, 영국, 독일, 캐나다 등 외국 사이트를 찾아서 내용과 자료들을 번역하며 숙지를 하였다. 잘 모르는 부분이나 국내 의료 환경상 의사에게 오랫동안 물을 수 없는 내용은 외국의사들과 E-mail로 소통하기도 하였으며 암에 대한 지식뿐만 아니라 각종 의학 지식과 뇌에 대한 책들, 웃음치료, 심리 부분까지도 방대한 접근을 하였다.
아마 그 당시 일주일에 적어도 5권씩의 책을 읽었던 것 같다. 딸아이는 힘든 암과 투병중이었지만 나는 내 인생에서 가장 많은 독서와 공부를 하였던 시기였다.
첫번째 항암을 마치고 퇴원하여 아이가 집에 왔을 무렵이었다.
그때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조금은 웃음이 나오지만 나는 진지한 표정으로 가족회의를 했다.
무슨 내용이었냐면 내가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미국으로 가서 혈액종양의가 되어 돌아오겠다는 선언을 하였다. 나는 그만큼 절박하고 절실했고 내가 유학을 가서 의사가 되어서라도 앞으로 내 딸만은 암에서 자유로워지기를 갈망했다.
다행히 가족회의는 아들 녀석의 중재로 마무리 되었다.
"아버지보다 제가 열심히 공부해서 의대를 가는 것이 더 빠르니까 저를 믿어주세요"
내가 공부를 한다는 것도 현실성 없는 이야기이지만 우리나라의 입시제도와 과열된 교육현장의 현실에서 아들의 약속 또한 공수표나 마찬가지이지만 그 순간에 나는 큰 짐을 나눈 것처럼 마음이 한결 더 가벼워졌다.
이 무렵 나는 딸에게 편지를 쓰면서 또 한번의 다짐을 하고 있었다.
사랑하는 딸에게
오랜만에 너에게 편지를 쓰구나.
화요일부터 입원해서 며칠 사이에 계속 떨어지는 백혈구와 호중구 치수들 그로 인해 잡히지 않는 열과 혹시 모를 감염이 염려되어 자리에 앉아 있어도 도무지 무엇을 하는지 모르겠다.
그럴수록 아빠는 열심히 운동도 하고 건강을 잘 챙기려고 한다.
홍비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선물은 건강히 아빠가 홍비 옆에 있으면서 지켜주고, 때론 투정도 받아주고, 늘 그래왔듯이 엄하면서도 언제나 든든하고 믿음직스러운 홍비의 팬으로 영원히 살아가는 것 아닐까 한다.
오늘 아침에 할머니랑 부산에 가서 엄마를 태우고 돌아왔단다.
자는 너 모습만 보고 인사도 없이 그냥 간이 체온기로 열만 잠깐 재보고는 돌아와서 미안해.
집에 오니 6시가 조금 넘었더라.
잠시 후 오빠가 일어나서 언제 갔다가 왔느냐고 하면서 홍비 안부를 물어 보았어. 또한 자기말로는 요즘 쉬는 시간에도 열심히 공부한다고 하네. 그리고 자기의 최종 꿈이 바뀐 것도 말해 주더라.
의대를 가서 의사가 되고 쉽데. 의사가 되어서는 큰 병원에도 있지 않고 다시 고향으로 내려와 생활하고 싶단다.
아빠는 홍준이가 왜 그렇게 자기 직업이 바뀌었는지 짐작이 간단다. 홍비도 알겠지?
그리고 아빠는 오빠가 이루어 낼 것이라고 믿는단다.
공부는 자신의 지능과 영특함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인내와 끈기로 부지런히 조금씩 향상되어 가는 거니까.
목표가 있고 그 최종 목적지에 가야 할 이유가 있으면 반드시 이루어진단다.
사랑하는 홍비야
너의 꿈은 무엇이니? 큰 꿈을 그려봐. 너의 인생 책 한권의 시작부분은 격동치며 전개되었지만 아직 쓰지 않은 많은 백지 상태의 빈 공간들이 있지 않니?
그기에 너의 꿈들이 하나의 사실들로 알알이 박히게 만들어봐.
먼저 지금의 단원을 마무리 해야겠지. 그 내용은 아마 이렇게 될 거라고 봐
소단원 제목 : 병마와의 한판승
' …… 그렇게 이렇게 하여 홍비는 지혜롭고 용감하게 자신을 침범한 병마를 모두 무찌르고 무사히 학교로 돌아가서 전설이 되었고 어엿하고 예쁜 여고생이 되어 새로운 이야기를 쓰고 있습니다.
(독백 : 여전히 아빠는 홍비를 감시 중)'
그리고 아빠는 아빠의 인생책을 미리 적어 놓았다 누가 고치지도 지우지도 못하게.
소단원 제목 : 내딸을 괴롭히는 녀석을 한방에 보내다
' …… 그렇게 이렇게 하여 내 허락도 없이 내 딸을 괴롭힌 병마란 녀석을 한방에 짖뭉게 버리고 흔적마저 없애 버려 병마 세계의 무서운 전설이 되었고 어엿하고 예쁜 여고생이 된 딸을 보며 오늘도 흐뭇하게 웃고 있습니다.
(독백 : 여전히 홍비는 아빠에게 투정 중)'
참 호중구 치수 떨어질 때는 주사나 약도 중요하지만 음식으로 단백질을 보충하면서 시간에 따라 오르는 게 좋다고 하니까 입맛이 없어도 꼭 먹길 바랄게.
그럼, 사랑하는 홍비 화이팅!
사랑하는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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