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암 생의 가운데에서 만나다

김양수 교수와의 만남

홍바라기의 love lettet 2013. 12. 14. 12:18

1. 나의 허락도 없이 불쑥 찾아 온 암이란 불청객

 

김양수 교수와의 만남 

                                                                                                             Writted by 홍바라기

 

나의 직업은 엔지니어다. 정확히 산업기계설계 업무를 오랫동안 수행하였으며 공대 출신이다.

직업상 나는 원리나 이론을 알지 전까지는 설계에 착수하지 않으며 또한 상당히 고지식한 면도 없지 않다.

왜냐하면 설계라는 직종이 0.01mm의 단위나 오차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며 원인을 찾고 고심하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40대를 훌쩍 뛰어넘었기에 부서의 결원이나 충원사유가 생길때면 가끔 신입사원이나 경력사원 면접에 참석하기도 한다.

지금의 시대는 자기 PR시대라고 하지만 종종 경력사원 입사지원자의 면접장소에 가게되면 꼭 무엇이든지 만능인 사람이 있고 산업 전반에 대한 경험을 풍부하게 한 지원자가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회인이라면 불과 10여년의 경력으로 모든 것을 습력한다는 것은 거짓을 넘어서 나는 사기에 가깝다고 생각하고 이런 지원자에게는 점수를 후하게 주지 않는 편이다.

내가 하는 설계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그 분야는 무수히 세분화되어 있어서 서로 영역을 넘지 못하는 부분이 많다. 그런데도 모두 다 박사처럼 안다고 하는 것은 결국 어느 한 분야도 제대로 모르고 있다는 것을 시인하는 것이고, 무협영화에서 고수는 고수를 알아본다고 굳이 겨룸없이도 서로의 실력과 영역을 인정하기도 한다.

 

아이가 치료하는 동안, 그리고 나름 암에 대한 공부를 하면서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해봤다.

'우리가 의사라고 생명을 맡기고 있지만 분명 이 분야도 내가 수행하는 직업과 같을 것이다. 내가 앓고 있는 질병에 대해서 전문가를 찾는 일이야 말로 환자가 가장 신중히 고려하고 시간을 투자할 일이다.'  

   

내가 이비인후과 교수에게서 소개받은 혈액종양과 교수는 김양수 교수였다.

아이들의 방학 기간이라서 아들과 딸, 나 이렇게 셋이서 병원에 오게 되었고 그동안 그래왔듯이 나는 부모이지만 자녀들도 자기의 결정권이 있어야 한다는 신념이 강하기에 우리 세명은 손을 꼭 잡고 진료실 안으로 들어갔다. 

호지킨 림프종(Hodgkin Lymphoma)라는 진단명을 듣고 PET-CT라는 새로운 검사와 항암치료를 해야된다는 설명을 들었다. 그리고 암세포가 목의 림프절 이외에도 폐와 가슴, 비장을 포함하여 전신에 퍼져있다는 충격적인 사실도 듣게 되었다.

 

나는 의사에게 질문을 퍼부었다.

“내 딸을 완치시킬 자신이 있습니까?”
"서울에 있는 대형병원으로 가야하지 않습니까?"

“저의 폐와 비장을 아이에게 떼어서 주십시오.”

김양수 교수에게서 돌아 온 대답은 아직도 뇌리 속에 남아 있다.

“저도, 이 분야에서 자신이 있으며 서울의 어느 병원 의사들 만큼 자신 있습니다."

"이미 전신에 암세포가 퍼져 있기 때문에 지금 치료를 시작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서울로 가신다하여도 2~3개월은 다시 검사등으로 시간을 보내기 때문에 지금 당장 치료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아버님의 장기를 떼어서 아이에게 이식하여 줄 수는 없습니다"

"제가 꼭 낳도록 할테니 저를 믿고 치료를 시작하세요"

 

이미 그동안 딸아이의 병원 진료 결과로 의사들에 대한 불신이 강한 상태에서 딸 아이의 치료를 무사히 완수하고 고마운 배려와 염려를 나눈 내 딸의 주치의와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이번에도 나에게는 어떤 선택이나 준비를 할 처지가 아니었으며 그냥 심한 가뭄에 기우제를 지내는 간절한 마음으로 하늘만 바라보며 소망하고 원망하기만을 반복할 뿐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딸에게 호지킨 림프종(Hodgkin Lymphoma)이 암의 한 종류라는 사실을 말하고는 소리없이 눈물만 흘리며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