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암 생의 가운데에서 만나다

나의 허락도 없이 불쑥 찾아 온 암이란 불청객

홍바라기의 love lettet 2013. 12. 14. 10:00

1. 나의 허락도 없이 불쑥 찾아 온 암이란 불청객

 

[나의 허락도 없이 불쑥 찾아 온 암이란 불청객]

                                                                                        Writted by 홍바라기

기말고사를 마치고 이 달 말에 예약된 조직검사를 위해 병원을 내원했다.

오늘은 다시 한번 더 점검을 위해서 CT를 찍기로 되어 있었다.

공복인 상태에 의사가 지시한 양의 생수를 마시며 그래도 즐거운 음악 소리와 함께 부산을 향했다.

아침 일찍 CT 촬영을 하였고 결과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중 간호사의 호출이 있었다. 목부위 CT영상에서 아래 부분까지 의심스러운 종양이 보이니까 급히 전신 CT를 찍어라는 말을 전해들었다.

'이것은 아닌데…….'

이제는 내가 예상하고 예측하는 길로 가는 것이 아닌 전혀 다른 길로 가고 있음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CT 결과가 나왔고 이비인후과에서는 호흡기내과로 검사 결과와 함께 진찰을 받으러 가라고 하였다.

호흡기내과에서 내가 본 CT 영상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폐를 비롯한 가슴부위가 온통 시커먼 영상으로 채워졌다. 나는 이것이 무엇인지 의사에게 물었다. 하지만 시원한 대답은 이비인후과도 호흡기내과에서도 듣지 못했다.

순간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단어는 '암'이었지만 모두들 조심스럽게 함구하고 있었다.

 

의사들의 진찰을 마치고 조직검사 일정을 위해서 수련의의 설명을 듣는 시간이 왔다.

나는 "세침검사(FNA)를 2번이나 하여서 암이 아니라는 진단이 나왔는데 조직검사에서 암으로 판정이 될 수 있습니까?"라는 질문늘 하였고 돌아온 답은 "세침검사 만으로는 암을 판정하기에는 정확하지 않습니다"였다.

 

그럼 지금까지 딸아이에게 고통을 준 세침검사는 무의미한 행위였던가?

이 순간에도 피 한반울로 암을 진단한다는 기사와 광고가 쏱아지고 의사도 분명 세침검사 결과로 나에게 "다행입니다", "축하합니다."라는 말과 함께 암은 아니라고 했는데 나는 거대한 상업의 눈속임에 당하고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어느날 소리 소문도 없이 이렇게 갑자기 암이란 녀석이 본색을 드러내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후에 내가 암에 대한 공부를 하고 의료구조와 상업성을 알고서는 기가 막힐 지경이지만 이 부분은 아직까지 나의 의식과 관심에는 없었다.

그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암이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과 초조함 그리고 20여일이나 기다려야하는 오랜 기다림만이 가득했다.

하지만 나는 웃으며 딸아이에게 말했다.

"OO는 건강한 아이니까 아무 일 없을거야. 걱정하지 말고 우리 즐겁게 생활하자", "네~"

 

드디어 조직검사를 위한 수술날 당일이 왔다.

전날까지만 하여도 아내와 딸아이 둘만을 가기로 되었지만 아침이 되어서 도저히 둘만을 먼길로 보낼 수 없었다. '얼마나 외롭고 초조할까?'라는 생각이 들어서 나도 함께 동행하기로 하였다.

침상에 누워서 수술실로 향하는 딸과 손을 흔들며 수술실 문 앞에서 우리 부부는 손을 꼭 잡고 조마조마하게 서서 종종 걸음을 걷고 있었다.

혼자 있는 딸이 얼마나 두렵고 외로울지 당장이라도 수술실 안으로 뛰어들어가고 싶었지만 현실은 그러지 못했다. TV나 외국 영화에서 보면 보호자도 수술실에 따라 갈수 있고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꼭 잡아 주는 장면들이 있었는데 그것은 다 거짓말이란 말인가?

오직 허락된 것은 기다림만이였다.

나는 특별히 믿는 종교가 없었지만 그 시간 만큼은 간절히 하늘에 기도를 하고 있었다.

'제발~, 제발~, 무사히 넘어가게 하여 주시옵고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이 모든 것 제가 안고 갈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3시간 정도가 흘렀고 이어서 침상에 실려 나오는 딸의 모습을 보았다.

우리 부부는 누구라 할 것 없이 두 눈에 주루룩 눈물이 흘러 나왔다.

 

1주일 후 조직검사 결과가 나왔고 이비인후과에서는 혈액종양학과로 가서 정확한 설명을 들어라고 하였다.

그토록 이름조차 말하기 금기스러운 혈액종양과, 나는 이비인후과 교수에게 매달렸다.

"교수님이 우리나라에서 목에 대해서는 대가인데 교수님이 제 아이를 치료해주십시오. 저는 다른과에 가기 싫습니다."

"따님이 예쁘고 사랑스러운데 이 부분은 제 영역이 아니라서 혈액종양과로 가셔야 합니다"

평소 감정의 변화가 없는 고지식한 교수의 눈이 떨리면서 말을 아끼는 모습이 역력하게 비치었다.

"선생님 그러면 어느 교수에게 가야합니까?"

"우리 병원의 의료진은 다 유능하니까 걱정하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선생님 딸이라고 생각하고 교수님이 아시는 최고의 의사를 알려주십시오"

나는 진료실을 나오지 않고 버티고 또 버텼다. 그리고 매달리고 또 매달렸다.

이제 나에게 더 이상 후퇴와 선택의 길은 보이지도 있을 수도 없었다.

의사는 나를 한참 바라보다 한동안 생각에 잠긴 후, 한 곳으로 전화를 하여서 전후 사정을 설명한 후 잘 부탁드린다는 말과 함께 나를 진정시키고 있었다.

 

그렇게 찾아간 혈액종양학과에서 나는 생에 처음으로 호지킨 림프종(Hodgkin Lymphoma)라는 단어를 듣게 된다.

Hodgkin Lymphoma는 내가 영어를 중학교부터 대학교까지 공부하면서 어느 예문에도 보지 못한 단어였고, 우리나라 말인 호지킨 림프종 역시 국어시간이나 일상에서 한번도 접해보지 못한 단어였다.  

 

나의 허락도 없이 불쑥 찾아 온 암이란 불청객은 어떤 예고나 준비도 하기 전에 내 딸 아이의 몸을 조여 왔고 나와 딸, 내 가족은 그냥 무작정 집안으로 들이 닥친 적을 향해서 맨 손으로 싸워야 할 위기의 시간을 이렇게 맞이하였다.

역사는 되풀이 된다고 하였듯이 마치 임진왜란 직전과 같이 그동안의 조선통신사의 최종보고와 조정의 결정은 왜의 침략은 없다라는 결론이었지만 어느날 아침 부산 앞 바다에 구름떼처럼 나타난 왜선으로 조선의 땅은 어두운 그림자와 혼란의 공간으로 빠져들었다.

나 역시, 임진년에 부산이라는 땅에서 암세포가 내 사랑하는 아이의 온 몸을 뒤덮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분기탱천하고 있었고 두 주먹을 쥐며 할 수만 있다면 맨손으로라도 암이란 녀석을 당장 죽여버리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