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시간 걸려 밤샘 수술을 끝낸 의사는 큰 고비는 넘겼다며 안심을 시켜줬다.
다만, 종양이 뇌간 옆에 위치해 있어 다 제거하다가는 자칫 부작용이 우려되므로
1cm 정도는 남겨 놓았다고 하며 수술 결과는 좋을 거라고 알려 줬다.
그게 어떤 의미인지, 그게 향후 진행될 건지, 그게 끝인지 또는 시작인지
우선은 아이 생명의 유지가 최우선이었기에 되짚거나 따질 게재가 못됐다.
소식을 듣고 달려온 모든 가족들, 친인척들, 지인들과 함께 기뻐하기에 족했다.
뇌종양이 내게 최초로 인식되었던 것은 아마도 어릴 때의 영화가 아닌가 싶다.
70년대 초반의 홍콩영화 “스잔나”에서 여주인공이 뇌종양 환자로 나왔었다.
아시아에서 가장 예쁘다는 여배우 “리칭”이 열연했던 전형적인 멜로 영화인데
정훈희가 번안해 부른 감미로운 주제곡인 “해는 서산에 지고....”이란 노래는
아직도 가끔은 내 의지와는 무관하게 불쑥불쑥 내 입술에서 흘러 나오곤 했다.
그 영화에서 기억나는 장면중의 하나가 여배우가 때때로 두통을 호소하면서,
물체가 겹으로 보인다고 하고, 구토를 하기도 하는 전조증상의 묘사과정이다.
이런 광경은 우리나라의 연속극, 영화, 소설등에서도 뭔가 반전을 꾀할 때
어찌보면 상투적 진부적이라 할 정도로 뻔질나게 등장하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그 결말은 거의 죽거나 의식불명으로 처리가 되는게 다반사이고
극적인 순간에, 기적적으로라는 전제가 붙어야 살아 남는 시나리오가 태반이다.
사람의 생각 혹은 가치체계라는 것이 실상 자신의 인식 한계에 불과하다면
기실 내가 알고 있는 뇌종양의 실체라는 것 또한 이를 벗어날리 만무했다.
수술 후 아이는 중환자실로 옮겨지고, 그때 잠깐 본 아이의 얼굴은 참혹했다.
얼굴은 퉁퉁 부어있고, 붕대로 동여맨 머리에는 호스가 치렁치렁 달려있고,
귀 밑과 목 주위에는 핏자국이 선연했고, 입은 산소호흡기를 물고 있었다.
아내는 침대를 끌어 안고 꺽꺽 울어대는데, 나는 휴대폰 동영상을 찍으며
녀석아 빨리 일어나라 ...네가 이렇게 이겨낸걸 웃으며 같이 보자...울음 삼켰다.
중환자실의 환자면회는 생각 외로 빠른 새벽 5시에 허용됐다
아직도 깊은 혼수상태에 빠져 있는 아이의 모습은 평온하기조차 했다.
아가야 ...고생했다...푹 자고 얼른 깨야지?...엄마가 빨리 안아주고 싶다..
아내는 아이 몸을 쓰다 듬으며, 아이에게 혹은 자신에게 끝없는 주문을 하는데
그걸 아는 지 모르는 지, 아이는 자기만의 세계에서 사투를 벌이는 것 같았다.
“큰 형....내가...얌마, 빨리 일어나 놀러 가자 했더니 애가 손가락을 꽉 잡았어요”
나보다 몇 분 뒤에 면회한 막내동생이 흥분하며 현장중계를 몇 번이나 반복했고
그 걸 못 본 아내는 못내 아쉬워하고 또 대견해하며 눈물을 찍어내기 바빴다.
같이 밤을 지샌 병원장 후배는 뭔가 기적의 조짐이 보인다며 나를 위로해 줬다.
2차 면회는 오전 10시에 다시 허용된다고 하여
남는 시간을 활용할 겸 입원생활에 필요한 준비물을 챙기러 집엘 갔다.
딱 하룻만에 돌아온 집인데도 스산한 기분이 감돌 정도로 낯설기만 했다.
아내가 아이의 방에 들어가 대성통곡을 하기에 문을 닫아주고 컴 앞에 앉았다.
비로소 알게 된 뇌종양의 무서운 실체에 온몸이 덜덜 떨려오기 시작했다.
악성/양성, 생존율, 사망률, 부작용, 후유증, 생존기간 등등의 검색 단어들이
컴 화면에서 시퍼런 칼날을 휘두르며 내 눈을 난도질 하듯 날뛰고 있었다.
특히 15세 미만의 소아 뇌종양은 악성일 경우가 상당히 높고
게다가 생존율이 극히 저조한 교모세포종이라는 통계에 컴을 엎었다.
밖으로 나와 아파트 빈 터를 찾아 나무에 기대 담뱃불을 붙이려 했으나
온 몸이 굳어 자꾸 헛손질만 해 내동댕이 치고 통곡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녀석의 나이 겨우14살...이제 중 1...중학교복 입고 거울 앞에서 멋적게 웃던 게 엊그제...
때마침 비가 쏟아 붓고 있어서 울음과 눈물이 가려진게 그나마 다행이랄까...
2차 면회하는 동안 아이가 보여준 말과 행동의 회복력은 실로 놀라워서
불면에 지친 우리 모두를 경악과 기쁨으로 몰아 넣기에 충분했다.
심지어는 자기가 쓰러졌던 당시의 상황을 시간별 상황별로 생중계 하듯이
나지막하지만 또박또박 설명을 해주며, 다쳐서 미안하다고까지 말했다.
중환자에게 무리한 대화는 금물이라는 간호사의 만류를 받고 나서야
밖으로 나와서 환호작약하며 어쩌면 기적이 생길지도 모른다고 들떴다.
그래....여기 까지가 끝일거야....천운의 연속은 계속 될거야....
회복이 빠른 탓에 당일에 일반병실로 옮겨진 아이는 예전처럼 명랑했다.
우리 또한 아이에게 붓기 빠지고, 실밥만 빼면 곧바로 퇴원한다고 안심시켰다.
하지만 면회 오는 사람들마다 아내를 끌어안고 뒤돌아 눈물을 참는 모습에서
아이는 뭔지 모를 불안감을 읽어내는 듯 허공을 응시한채 생각에 잠기곤 했다.
그럼에도 우리부부는 아이의 수술결과가 좋았음에 우선 감사하고 만족했다.
뇌출혈로 곧바로 생명을 잃는 경우가 많다는 건 상식으로 알고 있었지만
뇌종양 제거를 아무리 잘했더라도 어쩔수 없이 근처 신경을 건드리는 바람에
언어/ 신체/ 지능장애를 겪는 경우도 많음은 병원에서 처음 들었기 때문이었다.
아이는 수술 부작용이 전혀없이 일반인과 똑같은 언행을 보여 우리를 감격시켰다.
시간은 흘러 수술후 10여일 후 조직검사 결과가 나올 때가 임박해 왔다.
옆 환자는 수술 당시 악성 같다고 했는데, 검사결과 양성 나왔다며 기뻐 날뛰었다.
진심 축하해 줬다. 또 진심 부러웠다. 진심 다음 우리차례라고 믿었다.
그런데, 회진을 온 담당 신박사가 상담하러 잠깐 내려 오시라고 하며 나가는 순간
머리부터 발끝까지 드릴로 내려 뚫는 듯한 금속성 파열음이 나를 뭉갰다.
“악성입니다.....뇌종양중에서도 희귀한 원시외배엽성(P.N.E.T)입니다
표준치료 안 할 경우.... 짧으면 3개월, 길어야 6개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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