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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암중모색(6) : 아는 만큼 보이나, 보이는게 다는 아니다

홍바라기의 love lettet 2015. 7. 30. 11:59

 

중국의 4대 쭉빵걸 중 한명으로 부차에게 대쉬하여, 오나라를 한방에 아작낸

월나라 꽃뱀 서시는 가슴앓이 병이 있어 언제나 미간을 찌푸렸다.

마을의 된장녀가 그걸 보고 자기도 가슴에 손을 대고

오만인상을 찡그리며 반상회를 설치고 다녔다.

그러자 마을 총각들은 대문을 잠그고 나오지 않았고,

유부남들은 처자를 이끌고 마을에서 도망쳤다.

이 추녀는 미간을 찡그린 모습만 흉내 냈을 뿐 서시가 찡그린 까닭을 알지 못했으니,

이처럼 뜻도 모르고 남의 흉내를 내어 세상의 웃음거리가 됨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 서시효빈(西施效矉)이다. 莊子<天運篇>

 

  

시골 소년이 연나라 수도인 한단(邯鄲) 사람은

걸음걸이가 아주 간지난다는 말을 듣고 한단에 갔다.

소년은 독학으로 한단 사람의 워킹스텝을 흉내내려 했으나 잘 안되자,

워킹학원에 등록했고 원장은 촌닭 걸음걸이가 몸에 쩔어있기 때문이라고 야지를 놨다.

그래서 원래 걸음걸이 박살내기 입문과정을 이수한 뒤,

최신 한단스텝 고급반 과정을 죽을 똥 싸며 다녔으나

여전히 숙달되지 않았다. 결국 소년은 배움을 중단하고 돌아가기로 했다.

그랬더니 이게 뭔 일....

예전의 걸음걸이를 완전히 잊어버린게 아닌가

할 수 없이 그는 설설 기어서 돌아갔다고 하며.

이처럼 남의 흉내를 내려다가 도리어 자기 본래 것까지 잃어버림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 한단지보(邯鄲之步)이다. 莊子<秋水篇>

  

 

뇌종양 제거 수술에는 머리뼈를 절개하여 들어낸 뒤 그 뼛조각을 냉동실에 보관해 두었다가

2~3주 정도 지나 수술부위 붓기가 빠지면, 보관된 뼛조각을 원래대로 맞추는 과정이 있다.

아이와 나는 장난스럽게 그 과정을 머리뚜껑 레고 조립이라고 부르곤 했다.

아이의 공포심을 없애는 게 최우선이었기에 녀석이 어릴 때 푹 빠졌던 레고를 응용한거다.

   

그런데 나는 그 2~3주를 기다리지 않고 뼛조각도 재조립하지 않은 채로 시골로 간거다.

아이를 데리고 시골의 요양센터로 가는 과정에는 결코 적지 않은 파열음이 있었다.

수술부위는 뼈가 없어 갓난아기의 숨골처럼 말랑말랑 거렸으니 오죽 반대가 심했겠는가.

그 부위가 머리 오른쪽 1/2을 차지할 정도로 넓기에 넘어지거나 부딪치면 최악의 경우고,

잠결에라도 뒤치럭 대다가 잘못 건드리면 초 비상사태가 발생함은 뻔한 일이기에 그랬다.

 

 원래의 치료 스케줄은 수술-방사선-약물치료, 즉 흔히 말하는 현대의학의 3대 치료인데

나는 수술만 한 채로 후속단계인 방사선과 약물치료를 거부한 것이다.

(나는 항암제라는 표현보다는 약물치료라고 부른다.

수술/방사선도 좋든 안좋든 엄연한 항암치료일 뿐 아니라

따지고 보면 암을 치료하기 위한 유무형의 모든 조치가 싸그리 항암치료인데

왜 유독 약물치료에만 항암제라는 존칭어를 붙이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되기 때문이다)

   

하나뿐인 아들이 이름만 들어도 끔찍한 악성뇌종양에 걸렸으나

천운 끝에 아무 부작용 없이 수술이 잘 끝나서 이제 한시름 놓았겠다

수술집도 의사가 권하는 단계대로만 하면 생존확률 높다는데 왜 거부했을까.

그건 아이의 뱔병 이후 몇주 동안 취득했던 다양한 암정보 때문만임은 아니었다.

 

내가 어릴 때 그러니까 지금의 아들만한 중학 2학년 때 몸이 붓는 증상이 있었다.

동네 약국을 거쳐 도립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아도 좀처럼 낫질 않고 붓기는 심해졌다.

그런데 민간요법에 조예가 깊으신 외할아버지께서 옥수수 수염 말린 것을 주셨고

몇날인가를 옥수수 수염 우려낸 물을 먹었는데 신기하게도 부종이 가라 앉았다.

  

아버님은 위궤양이 아주 심하셔서 언제나 한웅큼의 위장약을 입에 털어 넣곤 하셨고

그 통증에 못이겨 눈 뜨신 새벽에는 벌떡 일어나 동네를 몇바퀴 뛰시며 달래곤 하셨다.

아버님 친구인 병원장이 신약 추천해주면 반짝 좋아질 뿐 다시 원위치 되기 일쑤였으나

무면허 한의사가 양배추를 흐물흐물 삶아 장복하라는 말 듣고 엄청난 효과를 보셨다.

  

골수 등산/사진 매니아인 친구가 에베레스트 등반시 심한 손가락 동상을 입었다.

대학병원에서는 괴사 진행되고 있어 손가락을 자르지 않으면 손목까지도 위험하다 했으나

그 친구 수건 입에 물고 손가락 뼈 마디마다 뜸을 뜨는 고통 끝에 손가락 모두 멀쩡하다.

사진가답게 뜸 치료 과정을 낱낱이 찍어 대체의학 잡지에 3개월 연재로 실린 바도 있다. 

 

이 외에도 많은 경험담이 있는데 이런 것들이 나의 인식체계나 가치관에 녹아 있었을 게다.

또 내 전공은 상경계열임에도 이상스럽게도 독서목록에는 언제나 의학서적이 많았고

특히 기철학, 민간의학, 전통요법, 은둔거사등의 비주류 의료 책들이 주를 이루었다.

따라서 그런 류의 의식주 방식이 자연스럽게 내 생활 속에 자리하는 게 어색하지가 않았다 

 

아들이 병원에 입원하고 나서 맨 먼저 한 일이 아이 음식 집에서 만들기였다.

내가 알았고 해왔던 전통방식과 항암식단을 비교해보니 별반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또한 음식 외에 물, 보조식품, 보조기구, 정신요법등도 입원기간 동안 병행시켰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으나, 보이는 게 또한 전부는 아니었다.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이란 게 암이라는 괴물 앞에서는 너무나 기본에 불과한 것 같았고

분야별 전공자인 의사 앞에서는 숲과 나무를 놓고 초단답 형태의 상담으로 마감되었다. 

 

아마 암환자나 간병인이라면 그 어느 누구라도 수술/방사선/약물치료를 놓고

이루 말 할 수 없는 (정말 이 표현 밖에는 없다) 고민을 거듭했을 것이다.

여기에서 그 3대 치료의 당위성과 위해성에 대해서 언급은 하지 않으려 한다.

비타민 C에 대해서 조차 찬반이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3대 치료야 말해 뭐하랴.

그것의 선택은 오롯이 선택권자 혹은 결정권자의 인식체계 가치관이 결정할 문제다  

 

병원치료와 병원밖치료에 대한 지인들의 충고 혹은 경고 또는 논쟁의 초점은

의외로 단순한 것에서 촉발되고 귀결됐는데 그 것은 다름 아닌

과학적이고 검증되고 현대적이며 최첨단이고 초우량두뇌니까 맡기라는 거였다.

그러나 대부분 경험하셨듯이 의사와의 상담에서는 그걸 도저히 감지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내게 가장 확실하고도 또 그만큼 무책임한 권유는

남들이 다 하는 대로 따라가는 게 정답이라는 거,

그래야만 나중에 원망도 안듣고 후회도 덜한다는 거였다

참으로 말같지 않은 말이지만 가장 나를 고민에 빠뜨린 말이기도 했다

 

나는 아이가 병에 걸린 원인을 찾아 그것을 제거함이 원칙이라고 봤다.

원인 없는 결과가 세상에 어디 있단 말인가?

내게는 물론, 아내에게도 아들에게도 또한 환경에게도 당연히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한 원인에 대해서는 어느 병원에서고 별로 심도있게 들을 수 없었고

오히려 웬 한가한 태평가를 부르고 있냐는 묵언의 눈길만을 받았다.

물론 뇌종양 제거수술은 아이가 뇌출혈로 응급입원했기에 불가피한 상황이었고

3대 치료중 수술은 그나마 암환자의 시간벌기 전략으로서는 나쁘지 않다고 본다. 

 

어쨌든 나로서는 아내와의 상의를 거쳐 아들에게도 충분히 설명을 하고 결정했으나

후배인 병원장은 물론 사돈인 한의원장 조차도 요양센터로 가는 걸 거세게 반대했다.

 

후배인 병원장은 매주 토요일 저녁이면 항상 만나서 2차 까지 술 마시며 지냈기에

와이프들로부터 동성연애 하냐는 말 들을 정도로 가까웠고 의견대립 제로에 가까웠다.

그 순둥이 후배가 형을 묶어 놓고서라도 아이는 절대 못 보낸다며 세게 들이댔다.

 

 

 

 

 

출처 : 암과 싸우는 사람들
글쓴이 : 이구아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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