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의 죽음 / 서창범
지구별에 사는 어떤 시인이
이제 시詩를 쓰지 않는다고 하여
찾아가 왜냐고 물으니
더는 사람들이 시를 읽지 않는다고 말한다
미소만으로 도道를 전하고
몇 되지 않는 글자로도
애틋한 마음을 실어 보냈든 시절은 전설의 나라
이제 점점 길어가는 말과 글만큼
사람들의 미움과 오해는 더 깊어가네
이는 필시 그 옛날 숙과 홀이
혼돈에게 보답코자 뚫은 칠규七竅때문
혼돈은 보고, 듣고, 말하고, 숨 쉴 수 있게 되었지만
오호통재라 !
칠일지나 혼돈은 그만 죽어버리고
일곱구멍만 남은 혼돈의 나라 백성들은
이제 모두 소요한 세상에서 살아갈 운명에 빠졌다네
생각해보니 혼돈의 죽음은
똥구멍을 만들지 주지 않았음이랴
나는 다시 시인을 찾아가
시인의 시로
혼돈의 똥구멍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을 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