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 / 이육사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하진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光陰)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 詩人 이육사는 일제시대 대표적인 저항시인으로 손꼽힌다. 과연 저항시는 무엇일까? 말그대로 해석하자면 저항이란 어떤 모순되고 불합리한 상황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고 반대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곰곰히 생각해보면 식민지 시대를 살아가는 이 땅의 사람들에게 저항의 마음은 당연한 서정성이며 그러기에 저항시라고 특정하는 詩 역시 식민시대를 살아가는 시인의 울분의 서정을 나타낸 서정시의 한 종류임이 분명합니다.
그러면 일제를 찬양한 부양자의 詩도 서정시일까? 하는 질문이 문득 들었는데 나는 詩란 시대의 최소한의 良心이라고 생각하며 그러기에 거짓과 위선과 독재를 찬양하고 인간을 속박하고 자유를 약탈하는데 압장서는 글은 詩가 아니기에 자격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양심이 없는 글은 그저 찬양을 위한 종이 쪼가리며 문학과 예술의 밖에 존재하는 '비문학비양심상업성홍보물'로 그 바른 이름을 지어주는[正名] 바입니다
이육사 詩人는 1904년 4월 4일 태어나서 1944년 1월 16일 북경의 일본 감옥에서 옥사하였습니다.
경상북도 안동 출생으로 본명은 이원록, 감옥에 있을 때 번호가 264번였는데 이 번호를 기억하기 위해 호를 육사(陸史)로 하였으며 식민지 치하 민족의 운명을 소재로 저항 의지를 나타내는 시를 쓰고 무장독립운동에 참여하였습니다. 평생 17차례에 걸친 체포와 투옥을 당하였고 1943년 형의 소상을 치르기 위해 귀국하였다가 동대문경찰서 형사들에게 체포되어 북경으로 압송된 詩人은 북경의 일본영사관 감옥에서 갖은 고문에 결국 1944년 1월 16일 광복을 1년 앞두고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이육사의 공식적인 작품발표는 1939년을 마지막으로 보여지고 있기에 <광야>는 1939년 이후의 작품이 아닌지 조심스럽게 추축해보며 <광야>는 이육사의 유작으로 1945년 12월 17일자 자유신문에 동생에 의해 발표되어 세상에 알려지게 됩니다.
<광야>라는 제목에서 느껴지는 광활함은 저 더 넓디 넓은 만주와 시베리아 벌판이 떠오르고 이렇게 광활한 광야를 詩人은 무장독립운동을 하며 밤을 세고 달렸을 것입니다. 편하지 못한 삶과 항상 일제에게 쫒기는 불안한 생활이지만 밤이되면 땅을 침대삼고 하늘을 이불삼아 별이 총총한 바람부는 광야에서 잠을 청하며 느꼈던 시인으로써의 서정과 그리움 그리고 지금의 시간을 기억하며 목놓아 부르기를 당부하고 있습니다.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하진 못하였으리라
이렇듯 시인이 잠을 청하던 신성한 광야가 천고의 시간을 보내고 찾아 올 손님의 상황을 시인은 이렇게 예언합니다.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시가 있는 풍경 > 내가 좋아하는 시 100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 100선] 23. 교목(喬木) / 이육사 (0) | 2022.04.02 |
---|---|
[시 100선] 22. 황혼 / 이육사 (0) | 2022.03.13 |
[시 100선] 20. 돌담에 소색이는 햇발같이 / 김영랑 (0) | 2022.03.13 |
[시 100선] 19. 수풀 아래 작은 샘 / 김영랑 (0) | 2022.03.13 |
[시 100선] 18. 북 / 김영랑 (0) | 2022.03.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