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 / 이육사
내 골방의 커-튼을 걷고
정성된 마음으로 황혼을 맞아들이노니
바다의 흰 갈매기들 같이도
인간은 얼마나 외로운 것이냐
황혼아 네 부드러운 손을 힘껏 내밀다
내 뜨거운 입술을 맘대로 맞추어 보련다
그리고 네 품안에 안긴 모든 것에
나의 입술을 보내게 해다오
저 십이성좌의 반짝이는 별들에게도
종소리 저문 삼림의 속 그윽한 수녀들에게도
시멘트 장판우 그 많은 수인들에게도
의지 가지 없는 그들의 심장이 얼마나 떨고 있는가
고비사막을 걸어가는 낙타 탄 행상대에게 나
아프리카 녹음 속 활 쏘는 토인들에게 도라도
황혼아 네 부드러운 품 안에 안기는 동안이라도
지구의 반쪽만을 나의 타는 입술에 맡겨다오
내 오월의 골방이 아늑도 하오니
황혼아 내일도 또 저 푸른 커틴을 걷게 하겠지
암암히 사라진 긴 세 냇물 소리 같아서
한번 식으면 다시는 돌 올 줄 모르나 보다
※ 이육사는 1933년 「신조선」에 <황혼>을 발표하면서부터 1939년까지 그의 창작활동의 절정기를 맞이하게 된다. <황혼>은 육사(陸史)라는 필명으로는 처음으로 활동한 시이다.
21세기에서 30세라면 젊은 나이대에 속하지만 20세 전후에 시를 쓴 윤동주나 김소월의 시와 비교해보면 감정의 결이 다르게 느껴지고 조금 더 현실에서 자아에 대한 걱정과 염려가 보여지고 있습니다.
30세의 시인은 총을 들고 무장독립운동을 하는 와중에도 펜을 들어서 시를 잊지 않고 썼습니다.
그러면서 느끼는 시인의 마음은 무엇일까 감정이입을 해봅니다. 외로움과 그리움 그리고 현재에 대한 울분과 미래에 대한 불안정한 상황, 모든 것들이 혼돈처럼 와 닿았을 날들의 괴로움........, 어떤 날은 이러한 생각조차 할 수 없을 만큼의 육체적 힘듦, 때론 동지들의 죽음 앞에서 울부짖음........
그 속에서 시인은 정좌하고 자신의 방에 들어와 모든 것을 정리하면서 일상의 평화로움이 이보다 더 평화로움이 없을 날 같이 조용히 지난 시간과 회상을 그려내고 정리하고 있습니다.
<황혼>에서 시인의 독백과 같은 말, 그리고 시인의 바램과 같은 말, 시인의 참회와 같은 기억들을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말고 따지지도 말고 시어 그대로 읽어보면 찌릿한 감정이 이입될 것 같습니다.
'시가 있는 풍경 > 내가 좋아하는 시 100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 100선] 24. 절정 / 이육사 (0) | 2022.04.02 |
---|---|
[시 100선] 23. 교목(喬木) / 이육사 (0) | 2022.04.02 |
[시 100선] 21. 광야 / 이육사 (0) | 2022.03.13 |
[시 100선] 20. 돌담에 소색이는 햇발같이 / 김영랑 (0) | 2022.03.13 |
[시 100선] 19. 수풀 아래 작은 샘 / 김영랑 (0) | 2022.03.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