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이 오면 / 심훈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며는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이
이 목숨이 끊치기 전에 와 주기만 하량이면
나는 밤하늘에 날으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들이받아 올리오리다.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
그날이 와서, 오오 그날이 와서
육조 앞 넓은 길을 울며 뛰며 딩굴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 듯 하거던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을 만들어 들쳐 메고는
여러분의 행렬에 앞장을 서오리다.
우렁찬 그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 거꾸러져도 눈을 감겠소.
※ 심훈(1901 ~1936)은 일제강점기에 민족의식을 바탕으로 한 소설을 주로 쓴 작가로 우리에게는 상록수의 저자로 잘 알려진 작가이다.
1919년 3·1운동으로 투옥되었다가 집행유예로 석방된 뒤 퇴학당하여 1920년부터 3년간 중국에서 망명생활을 했으며 1925년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가동맹(KAPF) 발기인으로 참여하기도 하였다
그는 민적적 정서와 민족계몽의 글을 많이 썼지만 37세의 나이에 운명을 한 대표적인 일제 시대의 저항 작가이다.
시를 소개하면서 참 안타까운 사연은 대부분 일제에 대한 저항시인들은 광복된 조국의 하늘을 보지 못하고 병이나 또는 일제의 감옥에서 눈을 감았다는 사실이다.
그나마 초기에는 저항적인 작품을 쓰다가도 1940년대에 무릎을 꿇었던 변절작가들은 광복이 된 조국에서 명성을 얻으며 살아갔다는 아이러니를 보면서 가슴 한 편이 애잔해 온다.
심훈의 [그날이 오면]은 3.1독립만세 운동에 대한 기억과 회고와 감동을 표현한 시이다. 개인적으로는 육체적 고통을 안겨준 그날이지만 그날의 감동과 벅참은 또 다른 자부심일 것 같습니다.
심훈 시인을 위해 문승현님의 곡 [그날이 오면]을 올려봅니다.
한밤의 꿈은 아니리
오랜 고통 다한 후에
내 형제 빛나는 두눈에
뜨거운 눈물들
한줄기 강물로 흘러
고된 땀방울 함께 흘러
드넓은 평화의 바다에
정의의 물결 넘치는 꿈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내 형제 그리운 얼굴들
그 아픈 추억도
아 짧았던 내 젊음도
헛된 꿈이 아니었으리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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