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딸에게
오전에 엄마랑 통화 했는데 어제보다 조금 더 힘을 낸다면서 그래 아빠는 너무 고맙다
그리고 엄마에게 이야기 다 들었다
그동안 치료받은 것이 아까워서라도 끝까지 남은 치료 다 받을 것이라고 또 꼭 살 것이라고…….
너의 그런 마음 가짐과 각오가 한치의 흔들림에 없도록 아빠와 엄마는 끝까지 너와 함께 할 것이란다
사랑하는 홍비야 !
우리의 역사에도 누구나 포기할 수 있는 위기와 절망의 상태에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길을 가서는 민족의 생명과 나라를 위기로부터 구하신 분들이 많단다
그중에 대표적인 분이 바로 이순신 장군이시지
제 3의 아해는 ‘이순신’처럼 위기에서 나라를 지키는 든든한 군인이 될 것입니다
아빠가 쓴 아고라 청원문에 나오는 글이지
이순신(李舜臣, 1545~1598) 장군은 우리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을 말하자면 아빠는 서슴지 않고 그분을 말할 것이란다
이순신 장군의 3대 대첩을 이야기할 때 한산도대첩, 명량대첩과 노량대첩이 있단다
또한 장군은 7년의 전쟁기간 동안 단 한차례도 전투에서 패하지 않았단다
임금님마저 수도인 한양을 버리고 왜군을 피해 멀리 피난을 떠났고 이렇다할 나라의 지원이 없었지만 장군은 바다에서 연이은 승전보를 올렸고 드디어 한산도 대첩을 승리로 이끌어 왜군의 북진을 막았단다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혼자 앉아
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 하는 적에
어디서 일성호가는 남의 애를 끊나니
장군이 한산도에 쓰신 시(詩)인데 외로움과 무거운 의무감이 그의 어깨를 누르는 것이 가슴에 닿구나
이렇게 임진왜란의 승기를 잡은 장군이지만 간신배들의 모함으로 장군은 모진 고문을 당하고 죽음 직전까지 갔다가 '백의종군'이라는 일반 병졸로 권율의 장군의 휘하로 내려간단다
백의종군을 시작한 직후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비보를 듣게 되고 장군은 “속히 죽기만을 기다린다"는 절망적인 독백을 하신단다
장군의 시련은 여기서 끝이 아니란다. 잠시 전쟁이 소강상태이다가 정유년(1597)에 재개되었단다.
우리는 그것을 '정유재란'이라고 한단다
정유년 7월 원균이 칠천량 앞 바다에서 대패하고 원균을 비롯한 수많은 장수와 병사들이 전사하고 함선이 모두 파괴되어서 조선 수군은 그야말로 궤멸되었다는 표현을 쓸 수밖에 없는 실정이 되었단다.
그래도 수군의 중요성을 알고 계신 장군을 포기할 수가 없었단다.
今臣戰船尙有十二(금신전선상유십이)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있습니다
임금에게 아직도 12척의 배가 있으니 포기할 수 없다고 장계를 올리고 대당선 1척을 포함하여 13척의 배를 이끌고 나가서 싸운 것이 바로 명량대첩이란다
명량대첩 하루 전 장군은 “必死則生(필사즉생) 必生則死(필생즉사),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 는 글을 남기고 전투에 임한단다. 누구나 포기할 상황에서 13척이란 배로 상황을 반전시킨 세계 전쟁사에 길이 남는 이야기란다
명량대첩의 승리의 소식도 잠시의 기쁨이고 이어서 왜군의 보복으로 인해 장군의 사랑하는 아들 면이 왜군과 싸우다가 처참하게 죽는단다.
아들의 처참한 죽음 소식을 들은 장군은 다음과 같은 글로 자신의 심정을 나타낸단다
····· 저녁에 사람이 천안(天安)에서 와서 집안 편지를 전했다. 열어보기도 전에 몸이 먼저 떨리고 정신이 어지러워졌다. 정신 없이 뜯어보니 겉봉에 ‘통곡’ 두 글자가 써 있는 것을 보고 면이 전사한 것을 알았다. 나도 모르게 간담이 떨어져 목놓아 통곡하고 통곡했다. 하늘은 어찌 이렇게 어질지 않단 말인가. 내가 죽고 네가 살아야 마땅한 이치거늘 네가 죽고 내가 살다니 어찌 이렇게도 어그러진 이치가 있겠는가. 천지가 캄캄하고 밝은 해도 빛을 잃었다. 슬프다. 내 아들아. 나를 버리고 어디로 갔느냐. 남달리 영특해 하늘이 이 세상에 머물러두지 않은 것이냐. 내가 지은 죄 때문에 화가 네 몸에 미친 것이냐. 지금 내가 살아있은들 장차 뉘게 의지한단 말인가. 부르짖으며 슬퍼할 뿐이다. 하룻밤을 보내기가 한 해 같다
나중에 이순신 장군은 아들 면을 죽인 왜군들을 잡아서 그들을 죽이고 또 한번의 눈물을 흘린단다
이제 마지막 노량대첩의 아침이 밝았구나
그날 아침 아빠는 장군이라는 이름보다는 한 사람의 아버지가 되어서 이렇게 상상한단다
' 내 아들을 처참하게 죽인 왜적은 결코 한 놈도 무사히 자기 나라로 돌아갈 수 없다 '
' 왜냐하면 나는 아버지니까 '
그리고는 장군은 어쩌면 죽음의 길을 선택하셨는지도 모른다
갑옷을 벗고 눈에 잘 띄는 붉은 통제사의 옷만 입고는 직접 북을 "둥", "둥" 치면서 전쟁을 독려하였으니까
그렇게 명량대첩은 승리로 끝났고 장군은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는 유언과 사랑하는 아들이 있는 하늘로 가셨단다
임진왜란에 대한 기록은 이순신 장군의 직접 쓰신 '난중일기'와 서애 유성룡의 '징비록'에 잘 기록되어 있단다
이순신 장군은 400여년 전에 비록 우리의 곁을 떠나셨지만 오늘도 서울 광화문 광장에 동상으로 우뚝 서서 아직도 나라를 지키고 계시단다
사랑하는 홍비야 !
편지가 너무 길었구나
하지만 장군의 포기하지 않는 그 정신을 꼭 배워서 니가 완치되고 다시 건강해지기를 바랄게.
홍바라기는 씩씩한 홍바를 오늘도 응원합니다.
홍비야 사랑해~
2013년 1월 15일
사랑하는 아빠가
love letter -0105 제 3의 아해는 이순신처럼 위기에서 나라를 지키는 든든한 군인이 될 것입니다.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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