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딸에게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다 함께 약수터에 다녀왔구나
약숫터 가는 길에 있는 저수지에서는 일렬로 내려 않은 철새들의 모습이 장관이었고 또 우곡사에 도착해서 아직도 다 녹지 않고 남아 있는 곳곳의 눈 덕택에 눈싸움도 하고 절 옆 계곡에서는 얼음도 지치고 해서 재미있었구나
오늘은 누구나 부러워하는 부자의 대표인 제 5의 아해를 소개하마
제 5의 아해는 '빌게이츠'나 '이건희'와 같은 세계 일류 기업을 이끌어 갈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독재권력국가의 반대되는 개념으로 민주주의의 국가를 이야기 한단다
그리고 공산주의나 사회주의 국가에 반대되는 개념으로 자본주의 국가를 이야기 한단다
자본주의란 개인의 사유재산제도를 바탕으로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자본이 지배하는 경제체제로 현재 서유럽과 미국, 일본, 대한민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가 채택하고 있는 경제체제란다
오늘은 아빠가 빌게이츠나 이건희 회장 같은 사람의 생애를 논하는 것보다 이 사람들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부분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부와 명예를 가졌기에 우리나라 경주 최 부잣집 이야기를 통해서 아빠가 생각하는 부의 개념과 마음가짐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련다
다음은 경주 최 부자 가문에 내려오는 가훈과 그것에 대한 설명이란다
첫째,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은 하지 마라.
'과거를 보되'라는 말에서 학문을 가까이하여 지적 능력을 쌓으라는 말이지만 '진사 이상 하지 마라'라는 것은 권력을 가지기 보다는 선비로 남아서 양반의 신분은 유지하되 정치 권력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라는 의미란다.
지금 시대에도 '정경유착'이란 말이 있듯이 정치와 경제가 서로 결탁하여 나쁜 길로 간다면 관련된 개인은 멀지 않아 나락의 길로 추락할 뿐만 아니라 나아가서 나라도 그만큼 어려움에 빠지는 길이란다
둘째, 재산은 만석 이상을 모으지 마라.
보통 사람들은 자식이 자기 보다는 뛰어나기를 바란단다. 그래서 똑똑한 사람들은 자신의 후손이 더 공부도 잘하고 유명해지기를 바라며 부자 역시 후손들이 더 큰 기업을 만들거나 당대 보다는 나아지기를 바라는 것이 인지상정이란다
하지만 최부자 가문은 이러한 역설적인 가르침과 절제를 통해서 만인으로부터 대대손손 존경 받는 가문이 되었단다. 최 부자 가문의 후손들은 만석이라는 상한선을 지키기 위해 다른 부자 가문들이 약 70%의 소작료를 받고 있을 때 파격적으로 40%까지 소작료를 낮출 수 있었고, 자연스럽게 부의 혜택이 다수의 농민들에게 퍼져 나가게 끔 할 수 있었단다
그래서 경주 일대의 소작인들이 앞을 다퉈 최 부자 농사를 지으려고 줄을 섰고 나아가 수많은 소작인들은 더욱 열심히 일하였단다
셋째,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손님을 후하게 대접함으로써 덕을 쌓고 인심을 얻으라는 가르침이 담겨 있단다.
또한, 옛날에는 지금처럼 인터넷이나 신문과 텔레비전 같은 통신수단이나 언론매체가 없었기에 과객은 중요한 정보를 전달하는 또 다른 역할을 하였으며 과객을 후하게 대접함으로써 이들을 통해 다양한 정보를 수집하고 다른 지역의 민심도 알 수 있었단다
나아가 최 부자 가문에서 후한 대접을 받았던 과객들은 조선 팔도에 최 부자의 인심을 소문내었는데, 이것은 최 부자에 대한 좋은 평판이 되어서 나중에 동학혁명 이후에 경상도 일대에는 부잣집을 터는 활빈당이 유행했지만 최 부자 가문은 어떤 피해도 없었단다
넷째, 흉년기에는 재산을 늘리지 마라.
'남의 불행을 재산을 늘리는 기회로 삼지 말라'는 가르침으로 사람 사는 기본 도리를 말하고 있구나.
요즘에는 '남의 위기는 나의 기회'라는 말을 스스럼없이 하는데 아빠도 반성해 보는 대목이란다
실제로 최 부자 가문은 흉년에는 가난한 사람들의 약점을 이용하여 헐값으로 전답을 사는 그런 짓을 절대 하지 않았다고 한단다
다섯째, 사방 백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내 가족만 잘 사는 것에 그치지 않고 무릇 부자란 가난한 사람과 나눌 줄 알아야 된다는 가르침이란다. 최 부자 가문은 우리가 사는 세상은 '나만 잘 먹고 잘 살면 그만이다'가 아닌 진정으로 서로 잘 살고 서로 살리는 상생(相生)의 정신을 실천한 가문이란다
최 부자 가문은 춘궁기나 보릿고개가 되면 한 달에 100석 정도의 쌀을 이웃에게 나누어 주었고 흉년이 심할 때에는 약 800석이 들어가는 큰 창고가 바닥이 날 정도로 구휼을 베풀었다고 한단다
최 부자 가문의 이러한 나눔의 전통은 1대 부자인 최국선의 선행으로부터 비롯된 것으로 신해년(1671) 큰 흉년이 들었을 때 최국선은 “주변 사람들이 다 굶어 죽을 형편인데 나 혼자 재물을 지켜서 무엇 하겠느냐”라고 말하면서 곳간을 헐어 이웃을 보살폈고 이후부터 '사방 백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가 가훈의 하나가 되었다고 한단다
여섯째, 최씨 가문의 며느리들은 시집 온 후 3년간 무명옷을 입어라.
부자라고 하면 당시에는 보통 비단 옷을 입었지만 무명옷을 입음으로써 근검과 절약정신을 강조하고 가르치는 것이란다. 이 뿐만 아니라 보릿고개 때는 집안 식구들도 쌀밥을 먹지 못하게 했고, 은수저도 사용하지 못하게 했단다.
이렇게 철저하게 교육받은 후손들이 재산을 낭비할 리 없었기 때문에 수백 년 동안이나 부를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이 아닐까 한다
최 부자 가문은 일제시대에 와서 조상들의 나눔의 정신을 실현하고 그들의 부를 민족의 독립을 위해서 바쳤단다. 최준은 당대의 거부이면서도 독립운동단체의 활동에 거액의 자금을 지원하였고 동생 최완은 상해 임시정부에서 일하다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모진 고문 끝에 1921년 35세로 순국하였단다.
최완이 어느 노스님에게서 받아서 최 부자 가문에 전해 내려오는 말이 있는데 이는 다음과 같단다.
“재물은 분뇨와 같아서 한 곳에 모아 두면 악취가 나 견딜 수 없고 골고루 사방에 뿌리면 거름이 되는 법이다.”
사랑하는 홍비야 !
니가 살다가 남들보다 조금 더 여유가 있다면 반드시 오늘의 이야기를 기억하렴
어려운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란 말보다 최 부자의 이야기가 더 진솔하게 다가오는구나
오늘 엄마랑 너희들 노는 모습 지켜보며 사진만 찍은 아빠지만 마음이 들떠서 그런지 피곤하구나.
너도 오늘은 많이 피곤할테니 일찍 씻고 일찍 자도록 하거라
그리고 내일 오전에는 병원 외래 잘 다녀오고 …….
사랑해 홍비~
2013년 1월 20일
사랑하는 아빠가
love letter -0110 제 5의 아해는 빌게이츠나 이건희와 같은 세계 일류 기업을 이끌어 갈 것입니다.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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