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딸에게
안녕 홍비야 !
요즘 많이 심심하지? 엄마, 아빠, 오빠가 너랑 이야기하고 놀며 가끔 동무가 되어 주지만 진짜 친구들이 채워줄 수 있는 부분까지는 되지 못하구나
친구들이랑 있으면 그냥 걸어가기만 해도 '까르르~' 웃고, 같이 밥 먹기만 해도 미소 지어 지는데, 그런 부분을 다 만족시킬 수 없는 것만 봐도 이 천지(天地)의 구성원은 다 자기에게 미리 정해진 역활과 위치가 있는가 보구나.
비록 이것이 불편한 진실이지만 우리는 인정을 해야만 한단다.
사랑하는 홍비야 !
100번째 love letter를 보낼 때 잠깐 윤동주 시인의 '쉽게 씌어진 시'의 문구를 소개한 것이 생각나서 오늘은 전체를 소개한단다. 윤동주 시인, 장준하 선생, 문익환 목사는 다들 어릴 때는 용정에서 학교를 다녔던 절친한 동무였단다. 용정은 우리 독립군들의 고향과 같은 곳으로 '선구자' 노래 가사에 나오는 해란강, 용두레 우물가 등이 있는 고장이란다.
세 분 모두 다 우리나라를 위해서 살다 돌아가셨는데 세 친구의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
쉽게 씌어진 시 - 윤동주-
창(窓) 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시인(詩人)이란 슬픈 천명(天命)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詩)를 적어 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주신 학비(學費) 봉투(封套)를 받아
대학(大學)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敎授)의 강의(講義)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 때 동무를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沈澱)하는 것일까?
인생(人生)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詩)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창(窓)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時代)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最後)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慰安)으로 잡는 최초(最初)의 악수(握手).
사랑하는 홍비야 !
윤동주 시인의 '쉽게 씌어진 시'를 읽어 내리다 보니 아빠는 또 이런 생각이 든단다
쉽게 씌어진 편지
내 딸은 외로움과 투병으로 힘들어 하는데 / 편지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 부끄러운 일이다.
너에게 항상 좋은 부모, 당당한 부모, 희망을 주는 부모가 되고 싶은 데 너의 뒤에만 서서 말만 하는 부모가 아닌지 요즘 들어 헷갈리기도 하구나.
너에게 오늘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지만 아빠는 아직 그것에 대한 답장을 한번도 주지 못했단다
아빠가 많이 미안해
지난밤은 시인(詩人)의 시(詩)처럼 '창(窓)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아빠는 한참을 잠 못 이루고 뒤척이었단다.
아빠는 진심으로 딸의 완치를 바라고 소망하니 홍비도 이왕 아낌없이 주는 사랑이기에 이번 치료가 끝나면 반드시 엄마, 아빠에게 그런 기쁜 소식을 듣게 해줄거라 믿는다.
조그마한 힘이지만 매일 '나의 딸을 완치 시켜주십시오'라며 하늘에 기도하고 또 애걸하마
고마워 홍비
그리고 사랑해 홍비~
2013년 2월 6일
사랑하는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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