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딸에게
아파트에서 지내는 명절은 조용하고 고요하기까지 하구나
토요일과 일요일, 이틀의 공휴일이 끼여버린 짧은 명절 탓에 우리집에도 이제 더 이상 올 친척들도 없고 내일 입원하기 위해 네 엄마는 다시 음식 준비에 바쁘구나
오늘 편지에서는 일전에 잠깐 소개한 윤동주와 장준하 그리고 문익환 세 친구의 이야기를 해주마
이 세 분은 비슷한 시기에 태어나 우리나라 독립운동의 산실과 같은 용정에서 학교를 다니거나 생활하였단다. 세 명이 함께 이룬 에피소드는 없지만 각자 주어진 영역과 시간대에서 활동하였으며 민족과 나라를 위해 일한 것에는 차이가 없구나
서시의 시인 청년 윤동주(尹東柱, 1917.12.30 ~ 1945.2.16)는 만주 북간도의 명동촌에서 태어났으며, 아버지는 윤영석, 어머니는 김룡이란다.
1931년, 14세에 명동 소학교를 졸업하고, 가족이 용정으로 이사하며 용정에서 살았단다
1935년에 평양의 숭실 중학교로 전학하였으나, 학교에 신사참배 문제가 발생하여 폐쇄하자 다시 용정에 있는 광명학원의 중학부를 졸업하였고 1941년에는 서울의 연희전문학교 문과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영문학을 공부하였단다.
학업 도중 귀향하려던 시점에 항일운동을 했다는 혐의로 1943년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2년형을 선고 받고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복역중 일제의 생체실험에 의해 1945년 2월에 29세의 나이로 생을 마치고 말았단다
윤동주는 15세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는데 그의 생은 온통 인생과 조국의 아픔에 고뇌하는 시인의 삶이 였단다
서시
- 윤동주 -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나라를 위해 인생을 바친 독립군 장준하(張俊河, 1918.8.27 ~ 1975.8.17)는 독립운동가이자 언론인이며, 민주화 운동을 하시다가 생을 마감하신 분이란다
1918년 평북 의주 태생으로 일본 도요대학 예과를 거쳐 일본신학교를 다니다가 1944년 학도병으로 중국에 파병되었으나 6개월만에 탈출하여 린취안의 한국광복군에 합류하게 된단다.
이곳에서 <등불>, <제단> 등의 잡지를 발간하여 독립운동 세력의 단결을 호소하였으며 1945년 임시정부주석 김구의 비서로 대한민국에 돌아왔단다
52년 창간된 백낙준 발행의 <사상(思想)>지를 인수하여 53년 부산에서 월간 <사상계(思想界)>로 재창간, '자유', '민권'의 기치를 내걸고 자유·민주·반독재 투쟁에 헌신했단다.
1961년 5.16 쿠데타 후, '박정희 대통령 불가론'을 주장하다 1966년 <국가원수모독죄>로 복역하였으며 이듬해에는 박정희 유신정권의 탄압으로 <사상계>가 폐간되었단다. 그러나 1967년 신민당 공천으로 옥중 출마하여 제 7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고, 73년 통일당 최고위원이 되었단다.
또한 '유신헌법 개헌청원 백만인 서명운동'을 벌이고, 74년 12월 긴급조치 제1호 위반으로 15년형을 선고받았으나 형집행정지로 가석방된 직후 75년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을 발표하였단다.
그 뒤 민주회복국민회의를 통한 재야운동에 힘쓰다가 75년 8월 17일 포천 약사봉 등산길에서 의문의 추락사고로 이 땅에서 57년 동안의 삶을 마감하셨단다
93년 당시 야당인 민주당이 ‘장준하선생 사인규명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 타살을 주장하며 국정조사까지 추진했지만 이뤄지지 않았으며 장준하 선생은 1962년 한국 최초로 막사이사이상 언론부문상을 수상하였으며 저서로 <돌베개>가 있단다.
비록 많은 시간이 지난 후이지만 2012년 1월 24일 법원은 1974년 긴급조치 1호 위반 혐의로 기소돼 15년형을 선고 받은 고(故) 장준하 선생에 대한 재심에서 39년만에 무죄를 선고했단다.
문익환 목사(文益煥, 1918.6.1 ~ 1994.1.18)는 만주 북간도에서 태어났으며 한국의 목사이자 민주화 통일 운동가이고 신구교 공동구약번역 책임위원으로 일했고 1989년에는 북한을 방문하여 나라를 떠들썩하게 하기도 했단다.
1993년까지 국가 보안법 위반 등으로 총 6회에 걸쳐 투옥되었고 통일에 관한 여러 저서들이 있지만 오늘은 그 분이 쓴 '동주야'란 시를 소개하마
동주야
- 문익환 -
너는 스물 아홉에 영원이 되고
나는 어느새 일흔 고개에 올라섰구나
너는 분명 나보다 여섯 달 먼저 났지만
나한테 아직도 새파란 젊은이다
너의 영원한 젊음 앞에서
이렇게 구질구질 늙어 가는게 억울하지 않느냐고
그냥 오기로 억울하긴 뭐가 억울해 할 수야 있다만
네가 나와 같이 늙어가지 않는 다는 게
여간만 다행이 아니구나
너마저 늙어간다면 이 땅의 꽃잎들
누굴 쳐다보며 젊음을 불사르겠니
김상진 박래전만이 아니다
너의 ‘서시’ 를 뇌까리며
민족의 제단에 몸을 바치는 젊은이들은
후쿠오까 형무소
너를 통째로 집어삼킨 어둠
네 살 속에서 흐느끼며 빠져나간 꿈들
온 몸 짓뭉개지던 노래들
화장터의 연기로 사라져 버릴 줄 알았던 너의 피묻은 가락들
이제 하나 둘 젊은 시인들의 안테나에 잡히고 있다
사랑하는 홍비야 !
오늘 편지 많이 지루했지.
윤동주, 장준하, 문익환, 비록 함께 모여서 단체를 이루며 활동한 것은 아니지만 서로를 친구라 생각하고 그 친구가 못한 일을 성공하기 위해서 바통을 이어 받아서 자신의 일생이 다하는 날까지 릴레이를 하는 모습이 비록 시대를 달리 살았지만 진정한 친구라고 생각 되어지는구나
우리 홍비랑 아빠도 친구처럼 서로 도와주고 이해하고 그렇게 살아가자
곧 이제 우리도 기쁜 소식을 듣는 날이 다가오는구나.
아빠도 많이 기다려지고 그러는구나
남은 시간까지 홍비 꼭 힘내야 한단다
내일은 병원 가는 길 아빠도 함께가마
사랑해 ~ ♡홍비♡
2013년 2월 11일
사랑하는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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