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딸에게
어제 여행으로 많이 피곤하지 ?
그래도 내 집 들어와서 자고나니 외지에서 하룻밤 묵지 않고 늦게라도 집으로 돌아온 것이 잘한 일이라 생각되구나. 어떤 여행보다도 사실 자기 집에서 지내는 편안함이 가장 좋은 것인데 …….
여행 후 아빠가 가장 느끼는 감동은 내집의 소중함. 하지만 또 시간이 지나면 이 소중함을 찾기 위해서 사람들은 다시 여행을 떠나는 구나.
참 아이러니한 일이지 않니 ?
사랑하는 홍비야 !
아빠가 금산사를 들려보고 싶어한 이유는 진표율사와 금산사 미륵전에 있단다.
진표율사에 대해서는 금산사에 마당에 새겨진 비석에 잘 설명이 되어 있길래 아빠가 여기에 옮겨 적어보마
' 진표율사는 금산사를 미륵신앙 대가람으로 일으킨 중창 조사이다. 통일 신라 경덕왕 때 완산주 만경현에서 아버지 정진나마와 어머니 길보람 사이에 태어났다.
율사는 12세에 우연히 아버지의 사냥 길을 따라갔다가 연못에 놀고 있는 개구리를 잡아 화살촉에 꿰어두고 돌아온 일이 있었다. 이듬해에 우연히 그 곳을 다시 지나다가 전 해에 잡아둔 개구리들이 가엾게 울고 있는 소리를 듣고 자신의 지난 행동을 마음 속 깊이 뉘우쳤다. 이에 출가하여 금산사의 순제법사를 은사로 득도하였다.
율사의 나이 23세가 되어서는, 1년 동안 간절히 공부하면 문수보살의 현신계를 받을 수 있다는 은사의 가르침에 따라 변산의 부사의방(不思議房)에 들어가 몸을 바위에 던지는 망신참법으로 수행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각을 이루지 못하자, 율사는 내성을 기약하며 벼랑에 투신하였더니 푸른 옷을 입은 동자가 나타나 율사를 구하였다.
그 후 다시 7일간 용맹 정진하여 지장보살의 현전 수기로 계율을 받았다. 그러나 율사는 미륵보살에 뜻이 있었으므로 변산의 영산사로 자리를 옮겨 수행한 끝에 미륵보살로부터 점찰경 두 권과 증과의 괘쪽을 받았다.
이 후 율사는 금산사로 자리를 옮겨 금당(미륵전)을 짓고 그 안에 미륵장육상을 봉안하는 등 금산사를 미륵도량으로 크게 중창하였다. 해마다 단을 만들고 널리 설교하니 단을 베푼 좌석의 정결하고 엄숙한 품이 말세에서는 볼 수 없는 것들이었다. 현세에 용화세게를 건설하고자 전생에 지은 악업을 지극한 마음으로 참회하고 열 가지 선업을 닦도록 한 것이나, 미륵으로부터 전해 받은 점찰경을 바탕으로 점찰법회를 봉행한 것 등은 모두 율사로부터 시작된 것이며, 이로 말미암아 불법의 교화가 삼한에 널리 퍼지게 되었다
금산사를 중창한 후, 율사는 속리산 법주사, 금강산 발연사 등으로 자리를 옮겨 미륵신앙의 대중화에 노력하였으며, 삼국 통일 이후 이반된 민심을 위로하는 일에도 크게 애쓰셨다. 이에 율사의 미륵신앙 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여기에 간략히 기록하여 둔다. '
사랑하는 홍비야 !
불교가 이 땅에 처음 들어 왔을 때 불교라는 종교는 지금과 같은 대중의 종교가 아니라 왕족과 귀족들의 종교였단다. 즉 살아 있을 때 잘 살고 권력있는 사람들이 죽어서도 똑같은 부와 영화를 누리는 종교였단다.
하지만 불교가 미륵 신앙을 만나면서 아주 민생적인 종교가 되었단다
미래 부처님, 미륵 부처의 특징은 앉아서 기다리지 않고 바로 서서 있는 형태란다. 일반적으로 서 있는 불상은 미륵불이라고 생각하면 된단다
금산사 미륵전에 서 있는 부처님이 바로 미륵부처란다
아빠는 금산사의 미륵전에서 절을 하면서 한참을 마음으로 이야기 했단다.
앞으로 홍바는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살 것이니 나도 그리고 홍바도 더 이상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단다
아빠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 오고 입가에도 미소가 그려진단다
그때 상황과는 조금 다르지만 중국 왕부지(王夫之)의 自題畵像小詞(자제화상소사)라는 작품에 씌여진 ' 한가한 근심을 이제 너에게 다 보내노니, 아! 나의 양 미간이 활짝 개이네 '라는 문장이 생각났단다
점심을 먹고 산보를 한 금평저수지가 있는 동곡마을은 우리나라 근대의 증산(甑山)사상이 싹튼 곳이란다
그러한 땅이 이제는 종교인들의 자리다툼 지역이 되어버린 모습을 보니 아빠의 마음이 조금은 무겁구나
왜 ! 사람들은 본래의 그 모습 그대로 놔두지 않고 자꾸만 치장하고 꾸미려는지 모르겠다
사랑하는 홍비야 !
이번에 건강하게 잘 다녀와서 아빠는 너무 기쁘구나
다음에 기회 봐서 한번 더 다녀오자
그리고 그때는 변산이랑 곰소항 들려서 네가 좋아하는 젓갈도 많이 사고 해산물도 먹고 그렇게 다녀오자
아마 다음번 여행에서는 음식 제한이 사라질 것이란다.
우리 꼭 건강 회복해서 많이 여행 다니고 또 맛있는 것들도 많이 먹자
사랑해 내 딸, 홍비 !
잘 자, 홍비 ! ~
2013년 3월 17일
사랑하는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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