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딸에게
활기찬 새로운 하루가 시작된단다.
어제는 종일토록 병원에서 시간을 보내느라 많이 힘들었겠다.
검사하기 위해 복부에 피부를 떼어낸 자리는 어떻니? 불편하지는 않고? 꿰맨 자리가 아프지는 않니?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엄마나 아빠에게 즉시 말해야 한다.
다음주에는 중간고사가 치러 학교 가는 날이 있어 이런 저런 준비하느라 주말에도 조금 분주하겠구나.
이번 등교는 2학년이 되어 처음 가는 학교라 다소 낯설은 친구들도 있을텐데 어차피 2학기 때는 만날 친구들이니 그날 함께 얼굴 보며 인사는 하고 오렴.
사랑하는 홍비야 !
옛날 네델란드에는 스피노자(Baruch de Spinoza, 1632.11.24 ~ 1677.2.21)란 철학자가 살았는데 이 분의 명언 중에 이런 말이 있단다.
'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습니다.'
이 말을 그대로 해석하면 진짜 내일 지구가 멸망하는데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고 있다면 그 사람은 필시 멍청이라고 놀림을 받겠지?
아빠는 이렇게 생각한단다.
다가 올 미래를 우리가 예측은 할 수 있겠지만 모든 것을 알 수도 없고 결정되지도 않았다. 그래서 나는 나의 미래를 위해 투자하고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아서 꼭 결실의 열매를 거둘 것이라는 자기 다짐으로 다가 온단다.
20년도 지난 한참 전의 일이구나.
친구들과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면 오늘 나는 과연 무엇을 할 것인가?'를 놓고 열띤 토론을 벌였던 기억이 난단다. 무슨 말을 주고 받고 아빠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렇게 친구들과 이야기한 기억의 흔적은 남아 있단다.
그리고 글을 쓰다보니 헬렌 켈러(Helen Adams Keller, 1880.6.27 ~ 1968.6.1)의 <3일만 볼 수 있다면, Three days to see>이란 에세이가 생각난단다.
이 에세이는 요즘 TV에서 휴대폰 광고에도 나왔더구나. 아빠는 고등학교 영어 시간에 이 글을 배웠단다.
첫째 날은 나를 가르쳐 준 설리반 선생님을 찾아가 그의 얼굴을 보고 산과 들의 아름다운 꽃과 풀과 빛나는 노을을 보고 싶습니다.
둘째 날은 새벽 일찍 먼동이 터오는 모습과 영롱하게 빛나는 저녁 하늘의 별을 보고 싶습니다.
셋째 날은 아침 일찍 출근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아름다운 영화를 감상하며 저녁에는 3일간 세상을 보게 해 준 신에게 감사의 기도를 올리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홍비야 !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면 오늘 너는 과연 무엇을 하고 싶니? 그리고 헬렌 켈러의 입장이 되어 3일간 볼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면 무엇을 하고 싶니?
프랑스 철학자 데카르트(René Descartes, 1596.3.31 ~ 1650.2.11)는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코기토 에르고 숨, Cogito, ergo sum)'라며 생각하는 나의 존재는 의심할 수 없다고 했단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바로 존귀한 나 자신이란다.
너의 입장에서 오늘도 소중한 너의 꿈과 너의 것들을 생각해 보렴.
오늘 집에 가서 편지 주면 또 딸에게 야단맞을 것 같구나. ㅠ.ㅜ
그래도 다음에는 시간 내어서 철학자들 이야기를 써볼까 하는데 그래도 되겠지? ㅋㅋㅋ
항상 건강하고 행복하거라.
아빠는 홍비를 사랑합니다.
2013년 4월 26일
사랑하는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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