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살아가는이야기

세상의 모든 아이들은 아프다

홍바라기의 love lettet 2013. 9. 2. 12:51

세상의 모든 아이들은 아프다.

교육 및 교육제도에 관한 기본적 사항을 정한 법률인 교육기본법 제2조에는 대한민국 <교육이념>을 나타내고 있다.
      ‘교육은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이념 아래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인격을 도야(陶冶)하고 자주적

       생활능력과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함으로써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민주

       국가의 발전과 인류공영(人類共榮)의 이상을 실현하는 데에 이바지하게 함을 목적으로 한다.’

 

그리고 제4조 1항에서는 <교육의 기회균등>을 명시하고 있으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모든 국민은 성별, 종교, 신념, 인종, 사회적 신분, 경제적 지위 또는 신체적 조건 등을 이유로

       교육에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일반적으로 한 가정에서 아이가 아프면 모든 부모의 관심과 신경이 아픈 아이로... 쏠리는 것은 일반적인 현실이고 사회적 통념상 상식으로 통하는 일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에 때로는 신체적으로 건강한 형제자매가 그 만큼 사랑을 덜 받는 현상도 나타나게 된다.
여기에는 부모가 건강한 아이를 덜 사랑해서가 아니라 하루빨리 건강을 되찾아서 예전의 모습과 생활로 되돌리려주기 위한 일시적인 투자이고 배려인 것이다.
이 과정에서 표면적으로는 소홀함을 당하는 형제자매라 할지라도 사랑과 배려를 배우고 성인이 되어서 부모에게 답습한 학습을 또 하나의 가치로 삼아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역사가 되고 또 이 사회의 하나의 가치와 신념으로 자리매김을 하게 된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부모이든 선생님이던 누구를 막론하고 ‘세상의 모든 아이들은 아프다.’는 명제로 교육을 해야 한다고 본다.
경제적으로 부유하지만 마음이 아픈 아이들도 있으며, 가난이 힘들어서 고통 받는 아이들도 있으며, 불안전한 가족원 구성으로 외로움을 가진 아이들도 있으며, 또한 질병과 싸우는 육체적으로 아픈 아이들도 있다.
설령, 이 모든 경우에 속하지 않는다고 하여도 아이들은 불완전하고, 쉽게 상처받을 수 있고, 쉽게 외로워하며 혼자 힘으로 살아가기가 고달프기 때문에 보호하고 사회의 구성원으로 자리 잡을 때까지 보호하고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그동안 대한민국의 공교육은 괄목상대한 발전을 이루어왔다.
영유아 무상보육의 캐치프레이즈를 선두로 하여 무상급식, 학교 부적응 학생에 대한 대책과 대안 학교의 시작, 국제중학교의 보급, 폭력에 노출된 학생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폭력을 행사한 학생들의 마음도 아우르는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또한, 2017년을 목표로 고등학교까지 의무교육을 확대하고자 한다.
이렇듯 우리 눈에 비친 교육현장은 진지하고 많은 연구와 배려 속에 한 명의 학생도 소외감이 없도록 배려하고 있는 듯하다.

분명 서두에서도 말했듯이 세상의 모든 아이들은 아프다.
아픔은 과거완료형 시제가 아니라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현재진행형인 것이다.
하지만 현재 이 사회에서 소아암을 비롯한 건강장애학생들의 교육권을 들여다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질병을 가지고 치료를 한다는 미명아래 당연히 누려야 할 학습권을 제한하고 원적학교에서는 관심조차 없는 교육자들이 많다.

혹자는 왜 이 아이들을 잊어버렸냐고 물어보면 “얼굴을 본적이 없다.”, “질병에 대해서 몰라서 그런다”고 말을 하고 있다. 그리고 담임선생과 특수교육담당 선생사이에서 관리의 주체로 서로 다투기까지 한다는 이야기를 심심찮게 듣게 된다.
차라리 관심도 없고 바빠서 그랬다고 하면 많은 건강장애 학생과 그 가족들이 지금이라도 현실을 직시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정치의 현실 역시 마찬가지다.
건강장애 학생과 그 가족의 수가 적다고 항상 관심과 정책수립 대상에서는 소외되고 있다.
플라톤은 정치의 목적을 ‘정의의 실현’이라고 하였다.
하지만 오늘날 이 사회의 정치는 정의는 소실되고 공리주의와 이념의 갈등만이 남아 있다.
심하게 말해서 어느 쪽 표가 많아서 당선의 확률이 높을지에 관심과 주목이 집중되어 있다.
민주주의는 분명 다수에 가려진 소소의 의견도 귀 기울이고 존중해야하지만 퇴색해버린 지 오래다.

반 아이스(Van Eys)가 소아암에 있어 완치에 대한 정의를 '사회적, 정신적 및 신체적 안녕이며 어른이 되어서도 자신의 능력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선언하였듯이 나는 이 사회도 이런 場을 열 날이 머지않아 오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