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풍경/내가 좋아하는 시 100선

[시 100선] 10. 별헤는 밤 / 윤동주

홍바라기의 love lettet 2022. 1. 31. 19:15

별헤는 밤 / 윤동주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 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아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스라이 멀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거외다.

 

※ 나는 윤동주 시인의 서정성이 가장 돋보이는 시로 <별 헤는 밤>을 선정해보았습니다.
그의 시에 나타난 고뇌와 부끄러움, 시대의 저항정신은 바로 그의 서정성, 근대화의 시작을 경험하는 청춘의 서정성에서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시를 평론하는 자들은 시인의 시를 행과 연으로 나누고 각 단락과 단어에서 나름 의미와 숨은 뜻을 나타내려고 하지만 시인에게서 시의 행과 연은 호흡이고 숨 고르기고 생각의 쉼터라고 생각되기에 시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시험문제 풀듯이 시를 해부하지 말았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봅니다.
이 시 역시 1941년 쓴 작품으로 우리는 윤동주 시인의 순수성과 왜 그토록 밤하늘의 별을 사랑했는지, 시인은 그리움을 누구에게 고백하고 있는지 엿볼 수 있는 작품 같습니다.

 

밤 하늘의 별은 우리가 어디에 있던 그리운 이와 함께 바라보며 공감할 수 있고 비록 시간의 흐름이 달라도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한 공간에서 연결하고 만나게 해주는 좋은 만남의 장소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의 젊은 날, 별을 헤며 여러분들을 잠못들게 한 그리움은 무엇인지 오늘 밤 한 번 떠올려보세요.

 

만약 이 세상 소풍 끝내고 귀천하는 날, 우리가 한 권의 책을 소지하고 하늘로 가지고 갈 수 있다면 나는 어떤 책을 선택할 것인지 생각해보았습니다.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나는 간직하고 싶어졌습니다.
어쩜 시(詩)로 치자면 나는 소월의 시가 항상 부럽고 그의 천재적인 시어는 이 세상 언어가 아닌 것 같이 느끼고 사랑하지만 윤동주의 시집을 최애(崔愛)로 생각하고 귀중히 여기는 까닭은 그의 시는 부끄러움을 고백하고 실천하고 있기때문입니다.

부끄러움을 맹자(孟子)는 "수오지심의지단야(羞惡之心 義之端也)"라고 하였습니다.
즉, 부끄러움은 세상을 변하게 하고 의롭게 하는 기본 원리라고 선언하였습니다.


지금 이 시대는 우리가 부끄러워할 있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 부끄러움을 시인하고 글로 아픔을 표현하는 일은 어렵고도 어렵고 스스로에게도 어쩜 아픈 일이 될 수 있습니다.

부끄러움보다는 오히려 후안무치(厚顔無恥)와 무관심이 더 편하고 살아가는데 이익이 된다고 생각하는 세상에 살고 있지만 그래도 시인(詩人)은 그렇게 살아서는 안된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나는 윤동주 시인이 생전 보지 못한 그의 유고시집인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져가 그에게 전해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충분히 부끄러워했고 충분히 치열히 잘 살았다고 인사하고 고맙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