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749

시를 잊은 시인(詩人)

시를 잊은 시인(詩人) / 서창범 한 줄의 시도 적지 못하는 날이 몇 해 동안 시인을 괴롭혔다 시를 잊은 시인에게 시를 언제 잊었냐는 질문대신 잘 지내냐고 안부를 물으니 시인은 시를 잊어버렸다고 한다 시를 잃은 시인에게 시와 어디서 헤어졌냐는 질문대신 작은 손을 흔들어 보이니 시인은 시를 잃어버렸다고 한다 하지만 시인은 시를 잊어버린 것이 아니고 수줍음을 잊어버렸고 시를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사랑을 잃어버린 것을 알고 있었다 시를 쓰지 못한 시인은 시를 찾아온다며 먼 길을 떠났고 아직도 시인은 여행 중이라는 소문이 시장 후미진 곳 모퉁이에서 들려온다

시천주조화정영세불망만사지(侍天主造化定永世不忘萬事知)

시천주조화정영세불망만사지(侍天主造化定永世不忘萬事知) / 서창범 侍天主造化定永世不忘萬事知 열석자굳은맹세 녹두꽃떨어지면울고간다던님은 내몸내서아국운수보전하고 남쪽을열어새세상만들자던님은 기험하다기험하다아국운수기험하다 侍天主造化定永世不忘萬事知 다짐하는열석자약속 내몸에한울님모시고조화가자리잡으니 영세토록잊지않고만사를알아가서 춘삼월호시절에태평가불러보세 侍 天 主 造 化 定 侍 天 主 造 化 定 永 世 不 忘 萬 事 知 世 不 忘 萬 事 知

아버지

아버지 / 서창범 1월의 겨울 밤 어두운 골목을 뚫고 길가에 섰다 태어나곤 처음으로 아버지의 귀가를 기다렸다 여느 때 보다 세차게 부는 바람이 뺨을 때리고 살을 에고 있었지만 느끼진 못했다 흐릿한 눈발로 은하수의 별들을 찾아 헤어가며 은행나무를 벗 삼아 기대였다 몽롱해져 가는 정신이 밤 중 고요를 깨고 들려오는 엠블런스의 괴음에 강타되었다 들것에 실려 가물가물 숨쉬며 마지막 집을 찾는 아버지의 육신과 눈물조차 말라버린 어머니의 한에 어느 듯 가슴은 찢어졌다 위태위태 그의 손을 부여잡고 재 되어 스러지는 체온을 감지했다 무언(無言)의 연속에서 서로의 눈을 주고받았다 이 밤 할 말은 많은데 무어 그리 바빴던지 재촉 심한 사자의 등쌀에 나의 손을 맥없이 뿌리쳤다 구슬픈 여인의 울음소리에 시계 소리가 잠들고 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