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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100선] 15. 내 늙은 아내 / 서정주

내 늙은 아내 / 서정주 내 늙은 아내는 아침저녁으로 내 담배 재떨이를 부시어다 주는데, 내가 "야 이건 양귀비 얼굴보다 곱네, 양귀비 얼굴엔 분때라도 묻었을 텐데?" 하면, 꼭 대여섯 살 먹은 계집아이처럼 좋아라고 소리쳐 웃는다. 그래 나는 천국이나 극락에 가더라도 그녀와 함께 가볼 생각이다.​ ※ 여태껏 다른 시인의 시는 시간을 갖고 올렸지만 서정주 시인의 시를 이렇게 빨리 소개를 마치는 것은 어쩜 그의 시를 소개하는 그리고 좋아한다는 부담감도 나에게 작용하였겠지만 다른 한편으로 작품으로써 시만 생각했을 때는 그의 작품에는 군데더기가 없다고 할 만큼 훌륭한 작품으로 생각되어집니다. 서정주 시인의 마지막 소개 詩로 [내 늙은 아내」를 선정한 이유는 곱곰히 그의 시를 찾아보다 그가 생에서 보여준 진심과 ..

[시 100선] 14. 가을에 / 서정주

가을에 / 서정주 오게 아직도 오히려 사랑할 줄을 아는 이. 쫓겨나는 마당귀마다, 푸르고도 여린 문(門)들이 열릴 때는 지금일세. 오게 저속(低俗)에 항거(抗拒)하기에 여울지는 자네. 그 소슬한 시름의 주름살들 그대로 데리고 기러기 잎서서 떠나가야 할 섧게도 빛나는 외로운 안행(雁行)- 이마와 가슴으로 걸어야 하는 가을 안행(雁行)이 비롯해야 할 때는 지금일세. 작년에 피었던 우리 마지막 꽃 국화(菊花)꽃이 있던 자리, 올해 또 새 것이 자넬 달래 일어나려고 백로(白露)는 상강(霜降)으로 우릴 내리 모네. 오게 지금은 가다듬어진 구름. 헤매고 뒹굴다가 가다즘어진 구름은 이제는 양귀비(楊貴妃)의 피비린내나는 사연으로는 우릴 가로막지 않고, 휘영청한 개벽(開闢)은 또 한번 뒷문(門)으로부터 우릴 다지려 아침..

[시 100선] 13. 동천(冬天) / 서정주

동천(冬天) / 서정주 내 마음 속 우리 님의 고운 눈썹을 즈믄 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 하늘에다 옮기어 심어 놨더니 동지섣달 나르는 매서운 새가 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네. ※ 1976년 5월 137호에 발표된 시로 그의 서정성을 가장 잘 나타내는 작품 중의 하나라고 생각됩니다. 서정주 시인의 서정성은 적극적인 표현을 자재하고 한발짝 떨어진 자리에서 그것도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살며시 그리웠다고 고백하는 듯 시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김소월의 서정성은 "나 아주 많이 너를 사랑하고 그리워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면 서정수 시인의 서정성은 말 한번 건네지를 모한 짝사랑과도 같은 느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