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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100선] 23. 교목(喬木) / 이육사

교목(喬木) / 이육사 푸른 하늘에 닿을 듯이 세월에 불타고 우뚝 남아서서 차라리 봄도 꽃피진 말아라. 낡은 거미집 휘두르고 끝없는 꿈길에 혼자 설레이는 마음은 아예 뉘우침이 아니라. 검은 그림자 쓸쓸하면 마침내 호수 속 깊이 거꾸러져 차마 바람도 흔들진 못해라. ※ [교목]은 1940년 7월 「인문평론」(1940년 7월)에 발표된 이육사 시인의 대표작 중 하나입니다. 우리가 쉽게 교목이라하면 학교를 상징하는 나무로 생각할수 있지만 여기서 교목이란 작은 키의 관목에 대비하는 큰나무로 교목의 사전적 의미는 '줄기가 곧고 굵으며 높이 자란 나무'라는 뜻으로 흔히 곧게 뻗은 큰 아름드리 나무를 부르는 명칭입니다. 교목은 때론 마을의 상징이 될 것이고 어느 높은집의 동량이 되거나 대들보가 되고 또 교목은 춘하추..

[시 100선] 22. 황혼 / 이육사

황혼 / 이육사 내 골방의 커-튼을 걷고 정성된 마음으로 황혼을 맞아들이노니 바다의 흰 갈매기들 같이도 인간은 얼마나 외로운 것이냐 황혼아 네 부드러운 손을 힘껏 내밀다 내 뜨거운 입술을 맘대로 맞추어 보련다 그리고 네 품안에 안긴 모든 것에 나의 입술을 보내게 해다오 저 십이성좌의 반짝이는 별들에게도 종소리 저문 삼림의 속 그윽한 수녀들에게도 시멘트 장판우 그 많은 수인들에게도 의지 가지 없는 그들의 심장이 얼마나 떨고 있는가 고비사막을 걸어가는 낙타 탄 행상대에게 나 아프리카 녹음 속 활 쏘는 토인들에게 도라도 황혼아 네 부드러운 품 안에 안기는 동안이라도 지구의 반쪽만을 나의 타는 입술에 맡겨다오 내 오월의 골방이 아늑도 하오니 황혼아 내일도 또 저 푸른 커틴을 걷게 하겠지 암암히 사라진 긴 세 냇..

[시 100선] 21. 광야 / 이육사

광야 / 이육사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하진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光陰)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 詩人 이육사는 일제시대 대표적인 저항시인으로 손꼽힌다. 과연 저항시는 무엇일까? 말그대로 해석하자면 저항이란 어떤 모순되고 불합리한 상황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고 반대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곰곰히 생각해보면 식민지 시대를 살아가는 이 땅의 사람들에게 저항의 마음은 당연한 서정성이며 그러기에 저항시라고 특정하는 詩 ..